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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조선의 당(이원표)

(29호) ④ 이이와 집권당 서인 이이와 집권당 서인 이이의 분노 사림이 동/서로 분당되자, 이이는 이준경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 이준경이 이이의 주변에 사람이 넘치는 것을 보고 분당의 조짐을 읽은 것인데, 이이는 “죽기 전에 그 말이 너무 악하다”며 크게 화를 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분당이 되자 이이는 자신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고, 다시 사림을 합치기 위해 노력했다. 제일 먼저, 분당의 시발점이 된 심의겸과 김효원을 외직으로 보내고 동/서 각 당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화해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동인의 입장에서 이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동인의 지주역할을 한 이황의 이념(주리론)을 이이가 정면으로 반박(주기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동인과 이이는 정치적 신념에 큰 차이가 있.. 더보기
(28호) ③ 사림, 분당하다 사림, 분당하다 을해당론 선조 8년인 1575년, 이이의 주도로 김효원과 심의겸이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다. 중앙의 관리가 지방직을 도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별로 대수롭지 않으나, 역사는 이 일을 ‘을해당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유는 이들이 사림 분당의 결정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고, 이이는 양 측을 화해시키기에 앞서 주모자들을 떨어뜨려놓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갈라서기 시작한 사람은 다시 화합하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김효원이 이조정랑에 추천되자, 이조참의로 있던 신의겸은 김효원을 권력에 아첨하는 자라 하여 반대하였다. 명종 때, 공무 차 당시 권세가인 윤원형(문정왕후의 남동생)의 집에 들렀을 때, 김효원의 이부자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출세를 노리던 많.. 더보기
(27호) ② 당쟁전야 당쟁전야 공신들의 나라 조선은 태조 이성계로 대표되는 신흥무인집단과 사대부들이 손을 잡아 건국한 나라이다. 이성계는 즉위교서에서 “문무 양과는 한쪽에 의해 다른 쪽을 폐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무신을 경시하는 풍조를 고치려 했지만 조선의 주류는 역시 문신, 즉 사대부들이었다. 사실 조선건국의 제일 큰 공이 있는 태종 이방원도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학식이 있던 유학자였다. 하지만 조선을 그냥 사대부의 나라라고 칭할 수는 없다. 고려 말, 사대부들은 정도전 등 역성혁명을 주장하는 급진파와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온건파로 갈리었는데, 후자를 대표하던 정몽주가 죽고 나서 온건파 사대부들은 모두 재야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급진파들이 조선을 세운 셈인데, 문제는 이들이 급격하게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 더보기
(26호) ① 당쟁이 나라를 말아먹었다? [조선의 당] ① 당쟁이 나라를 말아먹었다? 당쟁 때문에 임진왜란이 발생했나 흔히 우리는 조선의 가장 큰 폐해로 당쟁을 꼽는다. 전란의 와중에도 서로 헐뜯기에만 급급했다하고, 끊임없이 분열하여 나라를 말아먹은 가장 큰 원인이라 지목되었으며, 이를 비하하여 ‘붕당(朋黨)’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역사서는 당쟁에 매몰되어 전란을 방지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조선에서 당쟁이 발생한 것은 1572년경(을해당론)이고, 임진왜란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1592년에 발생했다. 과연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이 20년간의 당쟁을 보고 침략을 결정했을까, 또 이 20년간의 당쟁이 국방력을 극적으로 허문 계기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조선의 방위전략은 기본적으로 여러 거점의 산성을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