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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여행에세이(김모세)

(10호) 컵라면 없는 해외여행을 꿈꾸며


컵라면 없는 해외여행을 꿈꾸며

 

 

김모세 (중구 당원)

- 일정 중 한식은 몇 번이나 나오나요?

- 하루 한 번씩은 한식이 제공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중국 현지음식은 도저히 못 먹겠어요. 그것도 음식이라고 먹는지.

- 헤~ 우리나라 분들 입맛에 안 맞기는 합니다. 고추장과 김을 좀 가져가시면 도움이 됩니다.

- 맞아요. 전에 중국 갔을 때도 호텔 들어와서 컵라면으로 때웠어요.

- 에효~ 고생 많으셨네요.

 

해외여행 상담을 하면서 자주 대하는 장면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식만이 최고이고 다른 나라 음식은 멀쩡한 사람은 도저히 못 먹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남아 음식은 냄새나고 중국음식은 기름범벅이고 일본음식은 느끼한데다 달짝지근거린다고 투덜댄다. 인천공항 출국장에 가보면 겨우 며칠간의 여행을 위하여 컵라면, 고추장, 김, 소주 등을 박스째 바리바리 싸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한식사랑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지.

해외여행 중 음식에 대하여 유달리 까탈을 부리는 것은 사실 여행사들의 책임이 크다. 워낙 저가 싸구려 패키지 상품이 판치다보니 일인당 식단가는 형편없이 낮아지고 당연 질 낮은 식사를 제공하게 된다. 특히나 다른 지역보다 노투어피가 성행하는 태국, 중국 등의 지역에서 현지 식에 대한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외 모험담 중 음식에서 벌래가 나왔다, 무슨 냄새가 나왔다, 얼마나 더러웠나 등등의 흉흉한 이야기가 유독 이 동네에서 많이 나온다.

이런 정치경제학적인(?) 구조적인 원인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배타성이 문제이다. 하루라도 김치와 밥을 안 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돗는 독특한 유전자 때문인지 아니면 한식이 세계최고의 음식이라 생각하는 민족적 자부심의 발로인지 모르겠으나 유독 음식에 관해서는 심한편이다. 물론 각국의 독특한 식문화가 있고 낮 선을 타문화권의 음식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주일도 안돼는 여행 일정 중 하루에 한 번씩 자국 음식이 들어있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의 일탈이며 낮선 충격을 즐기는 것이다. 만리장성, 앙코르와트와 같은 문화유산이나 장가계나 북해도의 설국 같은 자연풍광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여행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역사 유적이나 자연풍광은 일 년 내내 TV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다. 태국 뒷골목 시장에 들어설 때의 그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냄새, 동경 지하철의 숨 막히는 조용함, 비포장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캄보디아 버스 안에서의 불편함과 긴장감 이런 경험 속에서 아~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며칠간 밥과 김치 대신 낮선 음식을 대할 때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부작용은 설사와 더부룩함이 다일 것이다. 이런 고통 역시 소중한 경험으로 즐겨보면 어떠할까? 다음 해외여행에서는 과감하게 고추장과 라면을 내팽개치고 어수선한 시장 속 좌판에 앉아 현지들과 어깨를 맞대고 같은 먹을거리를 즐겨보자. 당신에게 영 막돼먹은 음식이지만 그들에게는 매일매일의 일용할 양식이다. 그리고 설마 죽기야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