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예전엔 이 날이 되면 장충체육관 등에 중증장애인을 불러다 놓고,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였다. 요즘은 무슨 인권상이니, 활동상이니 하는 것을 주는 모양이다.
TV에는 잔치에 참석하여 기쁜 듯 웃고 있는 중증장애인 - 주로는 사지가 경직으로 뒤틀리고 언어 장애가 있는 뇌병변 장애인 - 의 모습이 비춰지고, 자신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여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친다. 여기에 지역유지나 정치인들은 기름진 얼굴로 다가가 휠체어를 밀어주며 나중에 자기 PR에 쓸 사진을 찍기 마련이다. 딱 하루 베풀고, 선심 쓰고, 얼굴 내미는 것으로 호혜적인 자기 이미지를 만드니 그들 딴에는 저비용 고효율 정치일 수는 있겠다.
364일 내내 집에 갇혀 있다가 그 날 하루 잔칫상을 받는 것으로 장애인의 삶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의 탄생 자체가 그렇다. 1981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비 안 오는 날을 잡아 잔치를 베풀어 준 것이 장애인의 날의 시작이다. 1년 내내 집에 갇혀 있으니 한 번 나와 잔칫상 받아보라고 하는 아주 큰(?) 의미가 담긴 날이고, 또 장애여서 다니기 힘들 테니 특별히 비 안 오는 날로 잡아주는 특별한 배려(?)가 담겨 있다. 불쌍한 장애인과 고마운 대통령 간의 관계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고맙게 잔칫상이나 받아먹어야할 장애인들이 바로 그 장애인의 날에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들이 목에 쇠사슬을 걸고 도로를 점거하니 정부로서는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터, 그렇게 되어서야 사회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하루 잔칫상 안 받아먹어도 되니 나머지 364일 동안 밖에 나와 다른 비장애인처럼 살고 싶다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말이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삶은 투쟁이 아니고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휠체어를 들어 버스에 타자 버스 이용을 방해한다고 연행해가는 세상이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을 턱이 없는 유치장에서 48시간을 버티고 또 버스 타러 - 그들 말로는 버스 이용 방해하러, 장애인의 생활은 그들에겐 ‘방해’이다 - 가길 몇 년을 반복해서야 저상버스 도입 계획이 나왔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여러 명이 추락해 죽거나 다치고,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선로에 뛰어 들어가 쇠사슬을 감기를 반복해서 겨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있다. 휠체어에 떨어져 몇 시간 방치되어 싸늘한 시체가 된 장애인들이 있고 나서, 그리고 한강대교를 무릎으로, 굴러서, 기어서 건너는 투쟁 끝에 활동보조서비스가 도입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시설비리 문제는 수백억원의 국민 혈세를 시설장들의 입에 처넣으면서도 시설장애인들의 인권이 외면되고 있고, 가까스로 시설에서 탈출하여 고발해도 바뀌지가 않는다.
달력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장애인의 날’이라는 문구를 지워버리자. 그리고 다
시 거기에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고 써 넣고, 가만히 올해 장애인계가 요구하고 있는 인권개선 사항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주변을 장애인의 시각으로 둘러보자. 다닐 수 있는 길인지,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인지 생각해보고 바꿔가 보았으면 한다. 비장애인만 걸어 탈 수 있는 계단형 버스는, 어린아이도, 노인도 불편하고, 유모차나 자전거도 올라갈 수 없지만, 저상버스는 모두가 탈 수 있는 버스인 것 처럼 장애인의 시각에서 설계하면 어떤 것이든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 혹은 사업이 된다.
무심코 비장애인만 타는 버스를 대중교통수단이라고 불렀다면 이제는 장애인도, 임산부도, 어린아이도, 노인도, 유모차도, 자전거도 탈 수 있는 저상버스를 ‘대중’교통수단이라 부르게 되도록 주장해 보았으면 한다. 바로 이런 것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장애인의 시각에서 무엇을 하면 ‘보편적’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곱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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