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 살아야 되는 사회
어렸을적 간혹 친구들과 싸움이라도 붙으면 그때마다 코피가 터지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옆집 친구에게 두드려 맞고 들어 온 모습에 화가 난 아버지가 태권도장에도 보내 싸움의 기술을 익히게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친구에게 맞서기보다 늘 부모님이나 선생님 뒤로 숨는 방법을 택했다. 아버지가 경찰관인 탓도 있고 주먹에 자신이 없는 까닭이기도 했지만, 주먹보다는 법이 날 지켜주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법이 나를 지켜주리라는 믿음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180도 바뀌었다. 전경으로 복무하던 선배는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이 부당하다며 양심선언을 했지만, 2년이 넘는 감옥생활에다 복무기간마저 고스란히 채웠다. 투표권 있는 대학생들의 대통령선거 조직을 이적단체로 몰아 구속하기도 했다. 법이 정의를 지켜준다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고, 내 판단의 어떠한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이 되었다.
얼마 전, 택배 노동자 박종태 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이때 문제가 된 것은 요구조건보다는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의 태도이었던 것 같다. 노동조합 인정 여부는 자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엄연한 법치국가에서 헌법이 정하는 권리를 행사했을 뿐인데,자본은 그조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핵심에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은 금호자본과 대한통운에 있으며, 이를 수수방관한 이명박 정부에게도 그못지 않은 책임이 있다. 젊디 젊은 아까운 목숨 하나가 사그라졌지만, 입만 열만 ‘법과 원칙’을 떠벌리던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조용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취임 선서문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그의 뇌 용량이 부족하여 벌써 삭제되어 버린 것인지?
대전시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달, 우리 당도 함께 하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에 관한 법’대로 장애인콜택시를 80대 확보해달라고 대전시에 요구했다. 이 법에 근거해 국토해양부는 계획을 만들었고, 2014년까지는 전국의 모든 도시에 법정 기준을 충족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전시가 보내 온 공문에는 당장 예산이 없어서 2013년까지 법정 기준의 50%만을 확보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어떻게 공무원이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공문으로 보낼 수 있냐고 분노했지만, 그들은 그 법에 강행규정도 처벌규정도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용산에서의 참사는 어떠했는가? 사람들이 떼로 죽어 나갔지만, 100일이 넘게 지난 지금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그들의 말대로 철거민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했고, 그들이 정당한 공무집행을 했어도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법은 약한 사람을 지켜주지 않는다. 정의도 아니거니와 최소한의 무엇도 지켜주지 않는다. 그저 권력 앞에 희롱당하는 가련한 존재인 모양이다. 센놈 앞에서는 한없이 쪼그라들고 약한 놈 앞에서 한없이 군림하는 비겁일 뿐이다. 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겠지만, 나는 법이 ‘최소한’이 되는 사회를 원한다. 그것만은 꼭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되길 원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이 되길 원한다. 사회와 권리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지켜주는 최소한이 되어주길 원한다. 법을 최소한의 무엇으로 만드는 것,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지만 이 시대를 넘어서야만 하는 우리들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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