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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8호) 우리에게는 '안보재판소'가 있다.


우리에게는 ‘안보재판소’가 있다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제기한 병역법에 대한 위헌소송에 대해 7대 2의 결정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7년만의 합헌판결이다. 7년 전인 2004년에도 똑같이 7대 2의 판결로 합헌이 결정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 합헌판결의 내용은 7년 전의 그것보다 한참을 후퇴하고 있다. 어떤 인권운동가의 말을 빌리면 ‘외국의 누가 볼까봐 부끄러워서 차마 말을 못할 지경’이다. 7년 전에는 합헌판결을 내리면서도 재판관 5명의 의견으로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취지로 입법부를 향해 정책적으로 해결할 것을 권고하는 주문을 담았다. 그것을 기점으로 국회 내에서 다양한 방식의 입법정책 토론회가 열리는 등 활발하게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국회 내에서의 입법 논의는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병력자원의 손실과 안보상황에 대한 걱정만을 장황히 늘어놓으면서 합헌판결을 내렸다. 국방부 관계자가 쓴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판결문에는 ‘안보’만 있고, ‘인권’은 없었다. 이쯤 되면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안보재판소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유엔은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근거해서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정부에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권고하는 결정을 계속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유엔 자유권규약을 위반하고 있다는 결정도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유엔의 결정을 자유권규약 가입국이자,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아주 우습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외면하고, 정부는 처벌하며, 법원은 박수를 쳐주는 식으로 말이다.

또 하나, 대체복무제도를 특혜라고 하는 순간 이 나라는 자신도 모르게 군대에는 인권이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군대에 인권이 있고, 복무자들이 인격을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대체복무가 특혜일리 없다. 그래서 계속 대체복무제도를 특혜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의 군대 내 인권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원래 3권분립이라는 것은 국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권력을 분산한 것이고, 어느 한 주체에 의해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면 다른 주체에 의해 바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 권력 주체가 역할을 나누어 인권을 말아먹고 있으니 참 대단한 나라라는 탄식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