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웃을 물들이는 사내
차승호
들판에서 불린 몸 빼내어
추수 끝나고 묵은 때와의 한판
목욕탕 수돗가로 걸어가니, 후미진 끄트머리
귀밑머리 길게 길러 정수배기 쪽으로
쓸어 넘기고 쓸어 넘긴 사내
중방리에서 대대로 농사짓는
아는 얼굴의 사내
칫솔로 염색약 찍어 거웃을 물들이고 있네
나이 들면 거기도 허옇게 세는가
투박한 사내의 손길을 따라
천년의 우물가 물먹은 돌이끼처럼
새까맣게 일어서는 거웃
나날이 변방으로 밀려 황량해진 들판에
씨 뿌리듯 모내기하듯
사내의 눈빛 참 진지하네
한 올 한 올 염색약 칠해가며 사내는
들판의 부활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자꾸 쳐다보는 내 눈길 의식한 듯해
어물쩍 선수를 치네
농사꾼은 워디가도 표난다니께
정성들여 가꿨으니 안사람이든 들판이든
한 십년 찍어누르는 건
일도 아니겄구먼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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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호 2004년 《문학마당》으로 등단. 시집 『즐거운 사진사』 , 『들판과 마주서다』, 『소주 한 잔』. 한국작가회의, 대전충남작가회의 회원.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인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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