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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태민아빠의 펄프픽션(김모세)

(16호) 좀비의 국제 정치경제학


좀비의 국제 정치경제학

태민아빠의 펄프픽션 1


이번 소식지부터 ‘태민아빠의 펄프픽션’이란 제목으로 추리, 과학, 공포, 무협 등 장르문학에 관하여 수다를 떨게 된 태민아빠입니다. 칼 폴라니나 우석훈도 아닌 허접한 싸구려 장르문학이냐며 탐탁지 않게 여기실 당원님들이 계실까 주저했으나 어쩌겠습니까, 글 독촉은 들어오는데 그래도 뭔가 구라를 떨 만한 게 추리소설이나 무협지 같은 통속소설밖에 없으니. 폴라니를 연재하실 고매한 당원님이 등장하여 퇴출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난 4월 24일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서 돼지독감으로 20명이 사망했다는 짧은 외신이 보도된 지 5개월 만에 서울에서만 신종플루 감염자가 4천명을 넘었습니다. 자본의 세계화 못지않은 바이러스의 세계화의 쾌거라 할 수 있는 감염속도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바이러스가 치사율 0.08%의 독감이 아닌 감염자를 움직이는 시체로 만드는 좀비바이러스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생산된 치료제조차 물량 확보를 못하는 MB정부가 우리를 지켜줄까요? 외계인이 침공하거나 지구를 향해 무시무시한 혜성이 다가올 때마다 세계를 구하던 미국이 다시 인류를 지킬 수 있을까요?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를 읽어보시면 아마도 답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문에 이를 무시하거나 은폐합니다. 정부의 은폐와 언론의 왜곡보도에도 불구하고 공포가 증가하자 자본가는 가짜 백신을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쌓아올립니다. 물론 정치가와 관료 그리고 언론의 협조를 통해서. 현관문을 긁어대는 좀비들의 괴성이 집집마다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의 보호가 사라졌다는 충격 속에서 가축 떼처럼 내몰립니다. 이 와중에서도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철옹성의 안락한 소파에 앉아 와인 잔을 들고 거리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을 실시간 중계로 감상하며 환호합니다. 가짜 백신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자본가는 남극의 기지에 최첨단 온실을 만들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안전한 전원생활을 즐깁니다.

 

충격과 혼돈의 시간이 흐르고 인류의 90%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점차 정신을 추스르고 좀비에 맞선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고안하면서 좀비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반격을 시도합니다. 살아남은 인력과 자원을 재배치하면서 선물 딜러, 광고 기획자, 세무 전문가 등 생산과 전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쟁 전 잘나가던 전문직들은 재교육 후 단순생산직으로 전락하고 3등 시민이었던 농부, 배관공,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의 주류로 급부상합니다. 맑스가 꿈꾸던 자본가들의 몰락은 조직된 노동자 대오가 아닌 인육에 굶주린 좀비들이 이룬 셈이죠.

 

인터뷰 형식이라는 새로운 시도와 탄탄한 구성 그리고 한국 상황을 묘사하는 인터뷰 대목으로 알 수 있는 사실적 고증을 바탕으로 작가는 페이크 다큐가 이를 수 있는 최정점에 도달합니다. 이 작품이 2007, 2008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점은 당시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던 부시정권의 힘이 컸으리라 예상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무능하기 이를데없는 정부와 몰염치한 자본가들을 보며 미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짐작이 됩니다. 물론 이런 골치 아픈 사회적 읽기를 뒤로하고 장르문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미덕인 재미만 놓고 보더라도 뛰어난 작품입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전문가들이 신종플루의 새로운 변종을 경고하는 이때 ‘세계대전 Z’를 추천합니다.

 

- 좀비를 다룬 다른 작품들은?

셀(Cell) / 스티븐 킹 저/ 조영학 역/ 황금가지

: 휴대폰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으면 좀비가 된다. 스티븐 킹의 최고 명작으로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대가의 범작은 그냥 범작이 아니다.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 리처드 매드슨 저/ 조영학 역/ 황금가지

: 1954년 출간돼 수많은 좀비시리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 리처드 매드슨의 대표작. 번에 걸쳐 영화화 되어 영화로 더욱 유명. 1964년 ‘지상 최후의 남자’(빈센트 프라이스 주연), 1971년 ‘오메가맨’(찰튼 헤스턴 주연), 2007년 ‘나는 전설이다’(윌 스미스 주연)

 

- 추가구성

이 소설을 읽으신 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좀비의 대 공습이 염려되시는 당원님들게 추천합니다.

The Zombie Survival Guide, Max Brooks, Random House Inc

이 책 한권이면 좀비로부터 당신의 귀중한 생명과 가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구입하신 고객에 한하여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100% 환불 보장해 드립니다. 영문판이며 가격은 인터넷서점 기준 20,450원. 단돈 이만원으로 소중한 자녀를 좀비로부터 지키십시오. 상담전화가 폭주하오니 1,000원의 할인과 함께 ARS 자동응답 주문을 이용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