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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태민아빠의 펄프픽션(김모세)

(20호) 아웃(OUT) - 현실의 삶보다 무서운 것이 있을까


아웃(OUT) - 현실의 삶보다 무서운 것이 있을까

태민아빠의 펄프픽션 4


인생의 벼랑 끝에 다다른 네 명의 여자들. 도박과 여자에 미친 남편 때문에 괴로운 야요이, 고약한 시어머니 수발에 몸도 마음도 병든 요시에, 감당할 수 없는 사치로 카드빚만 잔뜩 진 구니코, 언제 깨질지 모르는 가정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마사코, 심야의 도시락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은 현실에 대한 불안과 실망을 안고 있었다. “이런 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마음속에서 이렇게 외치는 그녀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살인사건이었다.

- 본문 뒤표지 작품 소개 글에서



뒤표지에 실린 소개 글만 보면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난다. 너절한 현실에서 힘들어하는 여자들이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만난다. 주인공들은 끈끈한 우정과 자매애를 발휘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뜬다. 이런 뻔 한 스토리를 예상하고 책장을 펼친다면 얼마 뒤 불쾌감과 당혹감으로 당장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 것이다. 너무 늦었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당신은 작가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어둠의 포스에 완전히 사로 잡혔다. 얼마 후 당신은 마사코의 넓은 욕실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시체를 토막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시락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야간 근무를 하는 네 주인공들은 희망 없이 하루하루가 고된 삶을 살아간다. 변함없는 일상은 야요이가 남편을 살해하면서 깨져버린다. 야요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마사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마사코는 야요이의 부탁을 받고 요시에를 끌어들여 시체를 처리한다. 우연히 사실을 알게 된 구니코까지 합세, 네 여자들은 마사코 집의 욕실에서 시체를 토막 내 수십 개의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여기저기에 버린다. 엄청난 비밀을 공유한 자는 서로를 믿고 의지할까? 전혀, 시간이 흐를수록 네 여자는 불신과 증오의 독니를 내보인다.

구니코가 빚을 진 사채업자에게 비밀이 탄로 나자 마사코는 본격적으로 사체 토막 사업에 뛰어든다. 마사코는 요시에와 함께 배달 온 시체를 해체한 뒤 택배상자로 발송한다. 네 여자는 끔찍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소설은 주인공들이 일하는 도시락 공장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모던 타임즈’의 채플린처럼 주인공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작가가 묘사하는 공장의 모습은 섬뜩하고 시릴 정도로 차갑다. 주인공들이 밤 새 만든 도시락을 다음 날 자신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홀로 쓸쓸히 먹는 장면은 인상 적이다. 고립 된 그녀들이 생산하는 도시락은 결국 다른 외톨이들이 소비하는 셈이다.

작가는 마사코와 다른 주인공들이 사체를 토막 내는 장면은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한다. 잘린 절단면의 생김새, 톱으로 목을 자를 때의 느낌, 욕실에 퍼지는 비릿한 피 냄새, 끔찍한 사체 처리 과정은 무미건조하고 담담하다. 공장 작업복과 앞치마를 두른 여자들이 분업 하에 일하는 모습은 공장 작업을 떠올린다.

여자들은 작업이 시작되면서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천연덕스럽게 한때 살아있었던 사체를 분해한다. 그녀들은 두려움이 없을까? 그녀들이 처한 현실이 삶이 더욱 두렵기 때문이다. 네 여자들 중 가장 인간적인 요시에는 첫 작업에 몸서리를 치지만, 얼마 후 새로운 일거리가 없는지 마사코를 재촉한다. 몇 년 째 중풍으로 누워있는 고약한 시어머니, 짐만 안겨주는 못된 딸들, 끔찍한 가난에 비하면 시체 처리 정도야 닭 껍질 벗기는 일이나 다름없다.

독자들이 아웃을 읽으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답답함은 높은 수위의 폭력 장면보다 너절한 감정을 일체 배제하고 90년대 일본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차가운 시선 때문이다. 어설픈 희망이나 인정 따위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는다. 실험실의 쥐들을 관찰하는 듯한 작가의 시선은 섬뜩하기 까지 하다.

비정규직, 정리 해고, 성적 소수자, 학내 왕따, 외국인 노동자, 가족의 단절, 소설에서 나타나는 10년 전 일본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을 고스란히 닮았다. 작가는 새로운 희망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절망과 고통을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만 한다. 당시 일본의 독자들은 기리노 나쓰오가 보여주는 자신들의 현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새 해 우리 작가들은 2010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야기 할까?

 

사족)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빵꾸똥고 해리가 지금 그대로 성장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면 소설의 주인공 구니코를 유심히 살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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