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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태민아빠의 펄프픽션(김모세)

(17호) 마스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평범한 일상의 서스펜스

마스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평범한 일상의 서스펜스

기고 김모세 (중구당원)


사람들은 추리소설을 읽으며 ‘나는 절대로 속지 않아.’라며 의지를 불태우던지 ‘어디 한 번 나를 놀래 켜 봐.’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 탐정의 천재성에 경탄하면서 헛다리짚은 자신의 머리에 절망하며 책장을 덮습니다. 잔인한 살인, 기막힌 트릭,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미스터리를 경쾌하게 밝혀내는 탐정 이런 것들이 추리소설을 읽는 묘미겠죠. 특히 복잡한 퍼즐과 같은 치밀한 구성은 일본추리소설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로, 시가시노 게이코, 시다마 소지가 이러한 일본 본격추리소설의 대표적 작가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붐의 주인공들이죠. 하지만 일본에는 이에 대항하는 또 다른 거대한 흐름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마쓰모토 세이초를 시조로 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본격 추리소설이 정교한 퍼즐 같은 불가사의한 범죄의 비밀을 밝히는데 집중한다면 사회파 추리소설은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적 동기와 배경을 중시합니다. 범죄 역시 고립된 섬이나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이 아닌 신문 사회 란에 몇 줄로 기록되는 그저 그런 범죄들을 다룹니다. 사회파 추리에 서는 천재적인 탐정이나 악마적인 범인 대신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사회파 추리의 시조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추구하는 미스터리를 이야기합니다. “물리적 트릭이 아닌 심리적인 작업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것, 작가가 만들어낸 특이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정을 찾을 것,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을 등장시킬 것, 누구나 경험할 만하고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서스펜스를 추구할 것.”

 

올해로 탄생 백주년을 맞는 마쓰모토 세이초는 마흔을 넘겨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1992년 타계할 때 까지 수백편의 장편을 남긴 일본의 국민작가입니다. 소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 지독한 가난, 늦은 나이로 시작한 작가생활 등 마쓰모토 세이초는 비주류가 갖춰야 할 덕목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일본 주류문단 뿐 아니라 학계, 정계에서 오랫동안 배격당해 온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일본문단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색깔론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주류문단에 편입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주류 밖에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 그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마쓰모토 세이초는 제도권을 무시하고 ‘세이초 월드’라는 웅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의 전성기인 60년대 이후는 오히려 그가 주도한 사회파 추리에 밀려 본격추리물들이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몰락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적지 않은데 마쓰모토 세이초는 군 생활을 전라북도 정읍에서 보냈고 그 곳에서 패전을 맞아 일본으로 귀환했습니다. 그의 자전적 저작인 ‘반생의 기록’에서 제국주의 군대의 야만성과 모순을 희극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제 강점기 카프로 유명한 임화를 주인공으로 하는 ‘북의 시인’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는 수많은 학술제와 행사가 열렸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많은 TV시리즈가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번에 소개하는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역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출간된 책입니다. 에이초의 장녀라 불리는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가 총편집을 맡은 이 시리즈는 상, 중, 하 세 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섹션마다 미야베 미유키의 해제가 수록됐습니다. 총 25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선은 마쓰모토 세이초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바람난 은행원(서예 강습), 실직자 남편을 둔 보험판매원(일 년 반만 기다려), 시류에 따라 역사관을 바꾸는 역사학자(카르네아데스의 판자) 등 갑남을녀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을 읽노라면 탁월한 심리묘사와 현실적 구성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진위의 숲’과 ‘공백의 디자인’에 나타나는 냉혹한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나 사회파 추리소설을 경험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훌륭한 입문서로, 그의 애독자라면 귀중한 소장본으로 가치 있는 책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탄생 백주년인 2009년이 넘어가기 전에 당원님들께 이 책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을 적극 추천합니다.

 

*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 소설

- 점과 선 : 후쿠오카의 한 해변에서 두 남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남자는 비리 사건으로 수사가 진행 중인 xx성의 과장대리 사야마 겐이치, 여자는 도쿄의 고유키라는 요정에서 일하는 오토키이다. 신문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비리에 연루된 사야마 겐이치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애인과 동반자살을 한 것으로 내다본다. 후쿠오카 경찰서의 노련한 형사 도리가이 주타로는, 사야마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열차 식당의 '1인분' 영수증을 통해 동반자살에 의혹을 갖게 되고, xx성 비리 사건 수사를 맡은 경시청의 경부보 미하라 기이치가 도리가이의 의혹에 관심을 갖게 된다.

- 모래 그릇 : 동경 전철에서 한 남자의 피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가 남긴 유일한 단서는 동북지방 사투리 '가메다'라는 말. 노련한 형사 이마니시는 집요하게 사건을 쫓는다. 그 노력을 조롱이라도 하듯 제2, 제3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