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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영화 리뷰(이원표)

(13호) 1번가의 기적

1번가의 기적 - 자본주의를 선전하다”

 

이원표

 

수돗물도, 인터넷도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의 무허가 주택들...

여기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누군가 가난은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헛소리를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죄다. 아니, 좀 불쌍해 보일 수는 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면 눈물을 흘려준다. 그러나 스스로의 눈물과 감성에 만족해서 돌아앉으면 그 뿐, 세상에 무수히 뿌려져 있는 가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철거깡패가 들어와 집을 허물던 날, 집이 없어지는 것을 보며 우는 아이들에게 인간적인 깡패, 필재는 이 노래를 시킨다. 무기력하고 가난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새 집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일 뿐, 헌 집은 두꺼비에게 주어야한다.

가난한 이들은 쥐어터지고, 이들의 무허가 판자집은 헐리고, 암에 걸린 노인은 집이 헐리는 줄도 모르고 밥 먹다가 시멘트가루를 밥상 채로 뒤짚어써야하고, 몸에 불을 지르고, 아이들은 울고... 그런데 이 영화는 해피엔드이다.

날고 싶어 했던 소년은 언덕에서 파라솔을 단 자전거로 날아버리고, 아이들은 집 나간 엄마를 찾고, 돈을 벌고 싶어 하던 처녀는 분수에 맞는 짝을 찾고, 1무 4패의 권투선수는 '얼짱' 챔피언으로 바뀐다. 순식간에...

진보신당 대전광역시당

이 영화에서 가난한 이들은 지독하게 불쌍하고, 지독하게 무저항이다. 마치 관객들의 눈물을 모두 빼 내보겠다는 심산이듯, 철저하게 짓밟히면서 지렁이인양 꿈틀만대는 가난을 묘사한다.

 

저런 철거가 있을까. 없다. 물론 어떤 식이든 철거는 되고, 가난한 이들은 쫓겨난다. 하지만 저렇게 쫓겨가지는 않는다. 저렇게 불쌍하게 쥐어터지고,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쫓겨나가는 경우는 없다. 현실은 그보다 더욱 가혹하다. 철거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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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용역깡패가 오기 전에 사람들을 모으고, 던질 돌맹이를 준비하고, 쇠파이프를 든다. 용역깡패와 포크레인이 올라오면 돌을 던지고, LPG가스통에 불을 붙이고, 타이어를 태우고, 몸에 똥칠을 하면서 접근을 막는다. 그러다 그 폭력성으로 사회적 규탄을 받아야하고,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이 되면서 철거는 진행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다. 자본주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항하지 말라.

헌 집은 두꺼비에게 넘기고, 새 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 그리고 잘 하면 얻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얼짱 체육인이 되든지, 연락끊긴 돈 많은 친척이 나타나든지, 아님 시집을 잘 가든지... 그리고 저항하지 않는 빈민은 최소한 관객의 동정과 눈물은 받을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기적이란 일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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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다.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만이 기적을 묘사할 수 있다. 기적은 해피엔드를 만들지만, 그 역시 상상에서만 가능하다.

기적이 현실적이려면, 두꺼비에게 헌 집을 넘기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