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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영화 리뷰(이원표)

(9호) 하나

하나 (花よりもなほ: More Than Flower, 2006)

 

이원표 (서구당원)

 

‘하나’, 우리말로는 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시대가 지나고 평화로운 에도시대의 평화로운 복수극 이야기이다.

복수가 평화롭다고? 그렇다. 평화로운 복수도 있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전국시대에 그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사무라이 계급은 평화의 시대가 되어서도 동경의 대상이 되어 계속해서 백성을 지배했다. 평소에는 검술을 익히며, 때때로 책을 읽는 사무라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이고,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원수에 대한 증오이다.

이때는 원수라 인정된 자에 대해 복수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 존경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사람을 죽이고, 자기 원수라 관청에 신고하면 사무라이로서의 명예가 주어진다. 반대로 복수하지 못하는 사무라이는 경멸의 대상이 되어 그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명예로운 사무라이는 벚꽃처럼 미련 없이 죽어야 한다. 하지만 소자는 땅에 지는 벚꽃이 아니라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벚나무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그에게 '증오'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믿으며 복수보다는 평화를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복수할 필요가 있었다. 명예로운 사무라이는 가문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세를 못내 쫓겨나야하는 뒷골목 이웃들을 위해 그는 그 돈이 필요했다.

 

"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복수하고 싶니? 복수하지 말라고는 안하마. 하지만 네 아버지가 너에게 남긴 것이 증오뿐이라면 너무 슬프구나. 네 아버지가 남긴 것을 생각하며 복수는 다른 방법을 찾자구나."

 

뒷골목 이들은 연극을 짰다. 한 명을 원수로 분장시키고 마을사람들은 '원수갚기다'라며 분주히 뛰어다니고, 소자는 관청에 가 신고를 했다. 그럴듯한 복수극과 죽은 이의 아내와 아들로 역을 짠 이들이 들어와 우리는 복수하지 않겠다는 말에 감동한 관리는 시체를 확인하지도 않고, 이 평화로운 복수극에 도장을 찍어준다. 복수는 끝났다. 이제 꽃을 피어야지.

 

"네 아비가 너에게 복수를 부탁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나 보구나. 좋다, 나도 여기로 이사 올까."

 

뒷골목을 찾아온 소자의 숙부는 유쾌하게 소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자 아버지의 유언은 몸에 맞지 않는 사무라이의 옷을 버리고 살라는 뜻이 아니었겠냐는 말을 던지고 간다.

평생 검술만을 가르치고, 어이없이 가버린 소자의 아버지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검에 소질이 있는 동생을 두고, 소자에게 유언을 남긴 것은 그것도 어이없는 말다툼에 자살하다시피 칼에 찔린 후에 남긴 유언은 소자에게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자 식의 복수를 하라는...

주인공 소자도 사무라이다. 허나 검을 쓰지 못하는 사무라이다. 단지 계급으로서의 사무라이일 뿐, 그에게 검은 의상일 뿐이다. 검술보다는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바둑을 두다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고, 상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자도 명예로운 사무라이로서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소자는 에도의 뒷골목을 찾아가 원수를 수소문하는 한 편, 뒷골목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한다. 마을로부터 쓰레기 취급받는 뒷골목에서 다투기도 하고, 정을 나누기도 한다. 평화로운 복수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벚꽃이 미련 없이 질 수 있는 이유는 내년에 다시 필 것을 알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