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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영화 리뷰(이원표)

(17호)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이원표 (서구당원)


학교에서든, 지역사회에서든, 노동현장에서든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홍반장’을 롤모델로 삼아보았을 것이다.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 해결하고, 마을사람들도 일이 생기면 일단 홍반장부터 떠올리는 장면을 보며 ‘내가 홍반장처럼 할 수 있다면’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건 우리 뿐만은 아니다. ‘홍반장’을 별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고, 어느 동사무소에선 ‘홍반장’ 임명장까지 준다고 하니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홍반장’은 지역사회의 일꾼 혹은 봉사자로서의 브랜드를 갖춘 셈이다. 이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지역사회에서 뭐 좀 하고 싶은 사람이면 ‘홍반장 같다’라는 말을 탐내기 마련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보정당운동을 일생의 업으로 하겠다고 대전에 내려와 막 1년쯤 되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홍반장정도면 지방의원정도는 쉽게 하겠군.”이었고, 그런 생각이 발전하면 “그래,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저 정도는 해야..”가 된다.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몇 번 보았지만,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일요일 날 경비아저씨하고 농담 따 먹으면서 함께 재활용품 정리한 것 말고는 별로 실천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홍반장’이 많으면 세상이 변할까? 일단 ‘홍반장’처럼 하면 지역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진보신당에 ‘홍반장’이 많으면, 세상을 우리 생각대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당원들에게 “모두 홍반장이 됩시다”해야하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이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한 번 더 보았다.

 

아, 홍반장과 치과의사 간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 속에 감춰진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 홍반장이 커 온 마을의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설상가상으로 키워주던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나서 천애고아가 된 홍반장을 그 마을 사람들이 키워서 대학까지 보냈다. 아마 성년이 된 홍반장이 마을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나섰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은 어린 홍반장을 위해 어떤 일이든 했을 것이다. 대학까지 보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단한 것은 홍반장일까, 마을사람일까. 그리고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하는 것이 홍반장일까, 그 마을일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어느 마을어린이도서관의 리플렛에 적혀있던 문구가 마음에 딱 와 닿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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