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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세계의 분쟁지역(이원표)

(18호) 황폐해진 녹색의 대지, 아프가니스탄


황폐해진 녹색의 대지, 아프가니스탄

세계의 분쟁지역 ①

이원표 (편집위원)



실크로드의 요충지에서 민족 간의 화약고로

인도의 서북쪽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동서 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던 곳이다. 많은 민족들이 엉켜 살던 화합의 땅이었지만 주변 강대국의 욕심은 이곳을 화약고로 만들었고, 평화로운 시기보다는 주변 강대국의 침입을 더 많이 받았던 곳이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19세기 소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불렸던 영국과 러
시아의 대결이었다. 남방진출을 꾀하던 러시아와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격렬한 세력다툼을 벌였고, 그 결과 아프간을 비롯한 주변 지역은 여러 민족의 거점지역이 무시된 채, 국경선이 만들어졌다. 아프간의 복잡한 민족구성과 이들의 내전에 주변 국가들이 지원하는 형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아프간은 크게 7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수파이며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파슈툰족, 타지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타지크족, 우즈베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우즈벡족, 투르크메니스탄의 지원을 받는 투르크멘족, 그리고 하자라족과 아이마크족 등이 있다. 이들 각 민족들은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분쟁하면서 기나긴 내전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그러나 소련의 침공

아프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했다. 대체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소련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결국 1973년 자히르 샤 국왕이 이탈리아를 방문하던 도중 사촌이던 다우드 전 총리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우드는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아프간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다툼은 잠재되어 있던 민족 간의 분쟁을 끄집어내는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이후, 아프간은 기나긴 내전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1979년, 소련은 ‘치안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간을 침공하여 꼭두각시 정권인 카르말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이 소련 주둔군에 대한 이슬람 무장세력의 게릴라전이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등장, 영웅을 키운 미국

오늘날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에 대한 이슬람세력의 격렬한 저항이 있듯이, 이 때 소련의 침공에 대해서도 종교적 성격을 띠는 범이슬람의 저항이 있었다. 이들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러시아정교의 침략이라 규정하고, 이슬람교를 지키기 위한 성전을 선포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무자헤딘(성스러운 이슬람전사)이라 불렀다. 소련을 견제해야했던 미국은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무자헤딘은 인접한 파키스탄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세계 각지의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에 모였고, 오사마 빈 라덴도 이 때 무자헤딘으로 참가하여 대 소련전 이후에도 전 세계 무자헤딘과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알카에다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사우디아라비아 거부의 아들로 태어난 오사마 빈 라덴은 수천억 원의 개인 재산과 건설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무자헤딘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프간에서    대 소련전에 참가하였던 것이 그의 명성을 드높였고, 또 사우디 왕실이 미주둔군을 허락한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다가 추방당한 것이 오히려 그를 이슬람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까지 수단과 아프간에서 알카에다를 이끌고 있다.


계속된 내전, 그리고 탈레반의 승리

1989년, 미국의 지원을 받는 무자헤딘의 격렬한 저항과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로 인해 소련은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아프간 인민민주당 정부는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무자헤딘 내의 권력다툼이 소련과의 전쟁 이상으로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무자헤딘 연립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연립정부는 새로운 불씨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인 랍바니는 소수파인 타지크족이었고, 총리인 헤크마티아르는 다수파인 파슈툰족이었다. 그리고 반정부군으로 돌아서 인민민주당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도스탐 장군은 우즈벡족이었다. 게다가 시아파인 하자라족은 이란이 지원하고 있었다. 결국 헤크마티아르 총리가 랍바니 대통령의 타지크족 우대 정책이 반발을 일으켜 정권을 이탈하고 수도 카불을 공격했다. 이어 도스탐 장군도 우즈벡족 지역으로 돌아가 독자적으로 그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하여 아프간은 각 민족별로 찢겨져 내전에 들어갔다.
군벌과도 같은 이들의 행위와 긴 전쟁에 지친 아프간 민중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신학(神學)생이라는 의미의 탈레브의 복수형이다.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캠프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1994)되었다. 지도자인 오마르는 파슈툰족이고, 탈레반의 대부분도 파슈툰족이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은 헤크마티아르 총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탈레반을 지원했으며 또 오사마 빈 라덴도 탈레반을 적극 후원하여 탈레반은 아프간의 90%를 장악하게 된다. 또, 탈레반은 엄격한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지역의 치안을 회복해갔기 때문에 아프간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아프간전쟁과 탈레반의 패주

탈레반에게 밀린 무자헤딘은 대립을 멈추고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1999년에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 통일전선’ 소위 북부동맹이 결성된 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911테러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의 거점인 아프간을 침략했다. 북부동맹은 미국과 함께 탈레반을 공격해 들어갔고, 미국의 막강한 화력에 밀린 탈레반은 패주하여 지금껏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도움으로 다시 정권을 잡은 북부동맹은 정부수

립에 나섰다. 과도정부의 총리로는 랍바니 정권에서 외무차관을 지낸 파슈툰족의 카르자이가 취임했다. 30명의 각료들 중에도 파슈툰족이 많았지만 북부동맹의 주력인 타지크족이 국방장관, 내무장관, 외무장관 등 요직을 차지했다. 2002년 6월 카르자이 임시정부가 출범했으며, 각 민족 간의 균형을 맞추어 내각을 구성하였지만 카디르 부통령(파슈툰족)이 암살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이후, 카르자이 임시정부 수반은 새 헌법 하에서 대통령에 취임하여 최근 재선하였지만, 각종 부정부패 의혹 등으로 탈레반과 같은 지도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부동맹의 주력인 타지크족과도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탈레반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어 아프간의 미래가 밝지 않다.


미국의 목적

미국이 아프간에 집착하는 것은 알카에다 때문만은 아니다. 탈레반이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탈레반이 알카에다가 아닌 이상 탈레반을 소탕한다고 알카에다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미국의 목적은 역시 석유에 있다.
카스피해 주변의 타지스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는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현재는 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러시아의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흑해로 운반되어 수출되고 있는데, 미국은 이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경유해 인도양으로 수송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아프간을 쉽게 평정할 것으로 보였던 탈레반을 지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알카에다와   손을 잡으면서 계획은 중단되었고,  미국은 그 계획을 위해서 탈레반을 확실히 제거해야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탈레반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만들어낸 아프간 내전

끊임없는 아프간의 내전은 결국 강대국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이곳을 주변 강대국들은 끊임없이 지배하길 원했다. 결국 아프간은 강대국의 이해에 의해 복잡한 민족구성을 가진 채 국경선이 확정되어 내전의 불씨가 만들어졌다.
처음 이 불씨를 당긴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의 개입과 침공은 아프간의 복잡한 민족구성에 기반을 둔 권력투쟁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미국이 기름을 부은 꼴이다.
복잡한 민족구성을 가졌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도 있지만 아프간의 많은 민중이 탈레반을 지지했던 것을 보면 평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도 결국에는 파슈툰족 수니파이지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각 민족과 종교적 이해를 융화인데, 강대국들은 항상 각각의 이해를 분리하여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려하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개입이 있는 한, 아프간의 평화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파병도 어떤 방식으로 포장하더라도 아프간을 더 깊숙이 내전으로 끌고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