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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세계의 분쟁지역(이원표)

(20호) 종교를 앞세운 영토분쟁, 카슈미르 (인도-파키스탄)


종교를 앞세운 영토분쟁, 카슈미르 (인도-파키스탄)

세계의 분쟁지역 ③


하루차이의 독립

인도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제국인 무굴왕조는 16세기 악바르 황제 대에서 무슬림이나 힌두교도나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최대의
의 전성기를 누리지만 그 이후 힌두교 왕국이 생기는 등의 반란으로 급격히 쇠퇴했다.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무굴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인도를 통치하기 시작하여 1857년 세포이의 항쟁을 계기로 완전 병합하였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독립하기 까지 인도지역은 동인도회사에 의한 지배를 포함하여 장장 2세기 간에 걸쳐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것이다.
힌두교도로 구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끈질긴 독립 운동 끝에 영국과 독립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게 되자 또 하나의 독립 운동의 주체였던 ‘전 인도 무슬림 연맹’은 <파키스탄 계획>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이슬람의 분리 독립을 추진했다. ‘인도 국민회의’의 지도자 간디는 다민족, 다종교가 공존하는 평화 국가를 구상했지만 결국, 국민회의파-무슬림연맹-영국과의 합의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하여 독립했다. 인도는 1947년 8월 15일에,  파키스탄은 15일이 이슬람의 안식일(금요일)인 이유로 하루 전인 14일에 독립을 선언했다. 이렇게 신생 ‘인도 공화국’과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탄생했다. 파키스탄(Pakistan)은 국어인 우르두어로 ‘순결한’이라는 뜻의 pak과 나라 혹은 땅이라는 뜻의 stan으로 ‘순결한 나라’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 지역을 구성하는 펀자브 주의 P, 아프가니스탄의 A, 카슈미르의 K, 신드 주의 S, 발루치스탄의 TAN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립 당시에는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의 파키스탄이 존재했지만, 동파키스탄은 인도의 지원으로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분쟁의 시작, 힌두교를 믿는 통치자와 이슬람교를 믿는 백성

식민지 인도는 영국이 직접 통치하는 지역 외에 일정한 자치가 허용된 번왕국이 존재했다. 당시 562개의 번왕국이 있었는데, 카슈미르도 번왕이 통치하던 지역이었다. 인도지역이 힌두국가인 인도 공화국과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분리하여 독립하게 되어 번왕들은 모두 어디로 귀속할 지를 결정했어야했다. 그런데 카슈미르는 번왕이 힌두교도인데 반해 주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여서  카슈미르 지역의 번왕은 결정을 미
루다 ‘독립왕국’의 욕심을 품게 된다. 그러나 곧 무슬림 주민들의 ‘파키스탄 귀속’을 주장하는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번왕은 인도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인도 귀속문서에 조인하였다.
인도는 카슈미르에 군대를 주둔시켜 반란을 일으킨 무슬림을 진압했고, 이어 파키스탄이 무슬림의 보호와 카슈미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군대를 일으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은 1949년 1월에 유엔의 조정으로 정전되어 카슈미르의 대부분은 인도가 획득하여 잠무카슈미르 주가 되고, 파키스탄은 아자르카슈미르와 카슈미르 북부 지역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후에 중국까지 이 분쟁에 끼어들어 악사이 친을 자국 영토로 편입시켜 카슈미르는 삼분되었다.


계속된 전쟁과 죽어가는 민중

애초에 카슈미르 분쟁의 원인은 이 지역의 민중들의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독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를 원했던 주민들은 힌두교 통치자들에 대해 거부하였고, 힌두교 통치자들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이것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하여 독립하게 되자 인도에 살던 무슬림은 파키스탄으로, 파키스탄에 살던 힌두교도는 인도로 대이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와중에 카슈미르가 종교 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주민 간의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약 1천 5백만 명이 이동하는 와중에 발생한 충돌로 30만 명가량의 주민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의 조정으로 인한 정전 라인이 잠정적인 국경선이 되었지만, 유엔 결의는 최종적인 귀속을 주민투표에 맡겨야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카슈미르의 대부분이 무슬림이기 때문에 인도는 지금까지 주민투표를  거부하고 있고,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1965년에 다시 한 번 인도와 파키스탄은 전면전을 벌였다.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다. 이때는 소련의 조정으로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갔는데, 1971년 동파키스탄 독립 운동이 일어나 파키스탄이 군대를 투입하자, 인도도 동파키스탄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내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는 인도가 승리하여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고, ‘카슈미르 문제는 양국 간에 해결한다’는 내용의 심라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이 인도가 유엔 결의에 따른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62년에는 티벳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으로 중국과 인도가 충돌하여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이 카슈미르 동쪽 지역을 ‘악사이 친’으로 하여 자국 영토로 편입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인도령인 잠무카슈미르에서 분리독립파까지 생겨났다. 원래 이 지역의 이슬람단체는 파키스탄으로의 병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 과격파가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슬람 과격파 무장단체는 최근까지 뭄바이에서 대형 테러 사건을 일으키는 등 분쟁의 새로운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또,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철군을 이끌어 낸 이슬람 용병 집단은 다음 지하드의 장소로 카슈미르를 택하여 분쟁을 키웠고, 인도는 이를 이유로 국제사회에 파키스탄을 테러지원국으로 비난하고 있다.


핵전쟁의 가능성

현대 물리학의 거장이자 핵무기의 기초를 마련한 아인슈타인은 제3차대전에 어떤 무기가 쓰일 것 같냐는 질문에 “제3차대전은 모르겠지만, 제4차대전은 돌도끼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 세계에 핵무기가 퍼져 있는 이상 제3차대전은 핵전쟁이 되어 모든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아이슈타인이 경고한 이 핵전쟁의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바로 카슈미르이다.
카슈미르를 분할 점령하고 있는 세 국가, 인도, 파키스탄, 중국이 모두 핵보유국이다. 인도는 중국과의 분쟁 과정에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고, 1974년에 핵실험을 성공시켰다. 인도를 공동의 적으로 두고 있는 파키스탄과 중국은 묘한 공동관계를 형성하면서 중국의 지원 하에 파키스탄도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가 호전되는 가 싶었지만 1998년 인도에서 힌두지상주의를 주창하는 우파정권인 인도인민당이 권력을 잡으면서 관계가 다시 틀어졌다. 그 해 4월 파키스탄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 가우리 발사 실험을 실시했고, 인도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24년 만에 핵실험을 강행했다. 파키스탄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가우리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인도 전역을 사정거리로 하고 있다. 가우리는 12세기에 인도를 정복한 이슬람의 전사에서 따온 것으로 인도에 대한 파키스탄의 적대감을 그대로 드러낸 이름이다. 가우리 미사일은 북한의 노동1호와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이제 양국은 경쟁적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있어 이 지역의 핵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미국은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지원했었던 점 등을 들어 인근 이슬람 국가로 핵이 수출될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이란의 핵 개발에 파키스탄이 깊게 관여했을 것으로 미국은 추측하고 있고, 북한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디의 꿈, 평화는 불가능한가

사실 인도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나라이다. 11억 명의 인구에 180여 개의 언어가 쓰이고, 공식 언어만 22개이다. 4개의 카스트에 카스트 계층마다 4000여 개 이상의 집단이 있다. 힌두교도가 다수이지만,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혼재되어 있는 나라이다. 인도 독립의 상징인 간디는 이 모든 다양성이 융합된 평화의 인도를 꿈꿨다.
그러나 간디가 극우 힌두교도에게 암살된 것처럼 현재의 인도는 간디를 비웃고 있다. 인도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간의 분쟁은 누가 먼저 테러를 저질렀느냐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인도의 힌두 극우 정당인 인도인민당은 간디를 폄하하면서 힌두 극단주의로 인도 국민들을 몰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인도에서 강력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한 무굴제국의 영화를 회상하며 힌두교도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무굴 제국이 가장 번영을 누리던 때는 종교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한 모든 이들이 등용되었던 때였다. 신흥 IT강국으로 성장하려던 인도가 뭄바이 테러로 위기에 빠진 예에서 깨달아야 하듯이 인도는 ‘간디의 꿈’이 실현될 때, 번영의 세기가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인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