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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2호) 어쩌면 그토록 똑같은지


어쩌면 그토록 똑같은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영문 약자로 KISTI라고 쓰는 이곳에 천막이 하나 있다.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복직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이다. 한 달째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있지만 KISTI는 요지부동이다.

어느 날, 출입구 앞에서 선전전을 마치고 유성당협과 KISTI 비정규직분회 조합원들이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몇몇의 유성당원들은 선전전을 하고 있는 곳에서 함께 피켓을 들기로 하고 먼저 모였다. 다들 조합원들이 만들어놓은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유성당협 위원장이 손에 피켓 세장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 틈에 피켓을 만들었지? 라고 생각할 즈음 다시 보니 얼마 전 롯데백화점 비정규직 해고 투쟁에 쓰던 피켓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 KISTI 투쟁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딱 들어맞았다.

롯데백화점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하나는 민간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하나는 물건을 파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를 하는 곳이다. 하나는 누구나 드나드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엄격히 출입이 통제되는 보안시설이다. 이렇게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이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어쩜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는 방식은 하나 빼지 않고 똑같은지.

두 곳 모두 저임금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한 이유는 모두 저임금이 이유가 아니었다. 부당한 업무지시와 비인격적인 대우, 그것이 노조에 가입한 이유였고, 노조를 통해 극복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너무 소박해서 협상꺼리조차 안되어 보이는 당연한 요구 덕에 모두 해고가 되었고, 천막을 치고, 혹은 천막조차 뺏기고 노숙 농성을 해야 했다.

비정규직이 사라져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회 모든 곳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효율’, ‘생산성’, ‘비용절감’ 등의 이름으로 인간 이하의 생활로 지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비정규직이 일반화되는 현재의 추세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미래 세대의 노동자들은, 즉 우리 아이들은 더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