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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3호) 사람을 철거하는 세상

사람을 철거하는 세상


지난 9일, 동구 구도동의 주민들이 시장님을 만나고 싶다며 시청을 찾았다. 그러나 시장실이 있는 10층은 엘리베이터가 아예 서지 않았다. 계단으로 가고자 해도 10층의 철문은 굳게 닫혀져 주민들은 로비에서 시장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대전에서 몇 안 되는 농민들이다. 대전시에서도 특산물로 자랑하고 있는 산내포도를 수확하는 사람들이다. 왜 이들이 시장을 만나러 왔을까. 도시에서 농사짓다보니 애로점이 있어서? 아니다. 이들이 시청을 찾은 이유는 엉뚱하게도 살던 집이 철거되기 때문이다.

남대전IC 인근인 이 지역에 대전시는 남대전물류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 개발사업으로 주민들은 대대로 살던 터전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대전시는 이주지가 마련되기도 전에 철거부터 하겠다고 덤비고 있다. ‘공익’이라는 명목을 달고 있는 개발이라서 터전을 내준 사람들인데 새로 살 집이 마련되기도 전에 쫒아내는 것이다.

도시를 개발하는 원래 목적은 도시의 거주민들의 편익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한국사회에서의 도시개발이란 그저 ‘투기’일 뿐이다. 그래서 항상 원주민을 쫒아내고 투기자본의 배를 불리는 방식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어떻게 벼랑으로 몰리는 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돈이 어떻게 불어나는 지만을 보는 것이 개발이다.

강제철거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굉장한데, 정확히 하자면 국제사회가 비난하고 있는 것은 강제‘철거’가 아닌 강제‘퇴거’이다. 강제철거란 말이 있는 것은 한국뿐이다. 철거는 단순히 건물을 부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어서 여기에 ‘강제’라는 말은 문법적으로도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강제란 ‘자기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행위’인데, 철거당하는 건물에 자기의사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철거민은 밥을 먹고 있다가 벽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도 철거가 이뤄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퇴거와 철거가 구분되지 않고, 그냥 모두 합쳐서 철거를 해 버린다. 그러다보니 철거를 하면서 사람이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을 철거하는 세상은 없어져야한다. 도시개발은 철저히 주민의 입장에서 이뤄져야하고, 이들의 삶이 온전히 보전되는 방식으로 되어야한다. 그것을 우리는 ‘순환식 개발’이라고 부른다. 원주민의 재정착을 가장 우선하여 고려하고 나머지 개발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대전시도 공히 도시개발의 목적을 ‘시민’이라고 할 텐데, 그 시민이 투기자본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주민을 만나 그들의 삶이 최대한 보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