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전쟁 - 정치는 과학을 어떻게 유린하는가-
(크리스무니 지음, 심재관 옮김)
김태훈
그러나 이렇듯 순수를 부정하는 나에게까지도 과학의 이미지는 절대적 진리기준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는 과학이 진리어서가 아니라, 진리의 이름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근대이후 과학의 이름이 신의 뜻 대신 ‘진리’의 자리를 차지했고, 새롭게 권력을 쥔 자본가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자식들의 구미에 적합한 진리를 생산한다.
보수진영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기독교 보수층의 표를 의식해 창조론 과학교육이 행한다. 과학 연구과정에 개입해 연구과정을 바꾸며, 연구이후에는 발표를 억압한다. 불확실한 자료나 허위자료를 언론에 터뜨려 주목을 받기도 한다. 보수적인 언론은 침묵하기에 허위자료가 문제되지 않는다. 이런 보수진영에게 과학자 일개인에 대한 협박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보진영 역시 과학의 이름을 빌린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실험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며 컴퓨터 모델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또한 환경단체는 유전자조작식품이 아직까지는 위험성에서 품종개량 식품과 차이가 없음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프랑켄슈타인’식품이라 명명하며 반감을 유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정치적인 과학왜곡을 비난한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과학적 진리 역시 만들어 나간다.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진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은 우리들의 진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문제는 설득시킬 힘이다.
따라서 좌,우 양측에서 가해지는 이데올로기를 제거하면 순수한 과학이 가능하다고 믿는 저자의 관점은 아쉽다. 순수한 과학이란 없다. 일정한 시대 특정한 지배집단의 입맛에 적합한 삶의 가치로서 도덕이 있으며, 지배층을 뒷받침하는 세계표현방식인 예술, 세계설명방식인 과학이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집단의 새로운 도덕,예술 과학이 필요하다. 부제처럼 정치는 과학을 유린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과학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에 맞서서 과학의 진실성을 지켜낼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성 기준은 나를 초월해 있지 않고 나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 있다. 진실성의 기준은 현실적 세력의 의지이다.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의 규모나 의미에 대해 이후 살아남는 정치적 세력이 역사적 진리를 만들어 나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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