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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내가 권하는 책

(6호)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자유새 (전주 당우)

 

책장을 둘러봐도 변변한 소설책 하나 없고, 사 모은 책들이라고는 꽂아놓고 읽지도 않는 사회과학서적 뿐이다. 나만 그러랴? 책 리뷰 하나 해달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결국 9개월의 임신부에게 글을 맡긴 내 지인들. 유물론자들은 마치 소설책은 읽지 않는다는 철학이라도 가진 듯, 새까맣고 새빨갛게 보기만 해도 위용을 자랑하는 맑스 원전과 주황색깔 자본론 등을 마음만 꽂아 놓고 몇 년 째 만져나들 보았으려나.

몇 권의 책을 뒤적이다가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면장선거’에 대해 쓸까? 아냐. ‘선거’라는 제도를 희화화하며 추악한 실체를 드러낸 것은 나름 유쾌하지만 결국 현실 수용적이고 패배적이야.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에 대해 긍정적 시선으로 본 ‘에디슨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을 소개할까? 그런데 왜 하필 에디슨이야. 포드와 함께 돌아다니며 보수행위를 일삼고, 발명가 테슬라를 짓밟으며 기술을 독점한 자본과 권위의 상징이잖아. 그럼 고전으로 돌아가 ‘1984년’? “Big Brother is Watching You.” 아!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기쁨도 희망도 없는, ‘내 진즉에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조지오웰님의 유일한 메시지가 담긴.....

책을 서점에서 고르기도 전에 작가의 삶과 사상부터 뒤지고 꼬고 분석하는 버릇들이 변변한 소설책 하나 냉큼 소장하지 못하게 하는 나쁜 버릇인 것이다. 물론 얼마 전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 증권 및 재테크 책만 모조리 대출해가고 예약까지 줄줄이 밀린 걸 보며 학생들에게 깜짝 놀란 것보다야 우리 대학시절이 더 낫다고 안도했지만은.

 

내 영혼도 이제 따뜻해지고 싶다.

이 책 제목만 들어도 나의 메마른 감수성이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다. 원제에 있는 ‘리틀 트리’는 저자의 인디언식 이름이다. 체로키족의 후예인 ‘작은 나무’가 고아가 되면서 백인에 의해 강제 이주를 따르지 않고 꼿꼿이 숲을 지킨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게 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욕심 내지 않는 그들 삶을 배워나갔던 어린시절의 이야기이다. 또한 문명이 마음대로 재단하여 교육권과 사회권을 빌미로 ‘작은 나무’를 학교와 수용시설로 데려가 가족으로부터 떼어놓고, 이미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이해하지 못할 그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모습도 그려진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 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 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사실 ‘작은 나무’였던 포리스트 카터란 인물도 ‘이런 아름다운 책을 어떻게 지었을까, 정말 할아버지한테 저런 교육을 받은거야?’ 싶을 정도로 인종차별주의자로서 KKK단 열성 멤버에다가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고 어쩌고 하며 나이 들어서 부끄러웠는지 자기 자신을 부인했다는데.

잊. 자.

우리의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진정 그런 것들이 아니다. 작은 나무에게 영혼을 일깨워주었던 할아버지가 죽음을 대할 때까지 일관된 삶의 방식이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따뜻한 모카신을 만들어주신 할머니의 편지는 죽음마저 희망으로 만드는 영혼의 몸짓이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 원제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 University of Nes Mexico Press 펴냄
포리스트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