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육아일기(남가현)

(15호) 때론 아는 것도 병이다. 모유수유 도전기

때론 아는 것도 병이다. 모유수유 도전기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아기는 큰대자로 누워 너무 편한 듯 곤히 잠들어 있고, 기저귀는 한여름 좋은 볕을 받아 금세 뽀드득뽀드득 말라가고, 그렇게 눈부시게 하얘진 기저귀를 접고 있노라면 나도 조금은 좋은 엄마가 된 듯 착각이 들곤 합니다. 문제는 이 평화로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며 또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남아있다는 점이죠.

아기가 잠에서 깨는 순간 엄마는 또 엉망진창 초보 엄마로 돌아가고 마니까요. 그래도... 아기가 보채서 하루 종일 안고 있느라 팔이 빠질 것 같다가도 아기가 한 번 씨익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불끈불끈 솟으며 하루의 짜증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엄마입니다.

 

하루하루의 일들을 모두 기록해서 아이에게 보여주겠다던 엄마의 꿈은 정말 그저 쫀쫀한 꿈에 불과했습니다. 뭔가를 적는 것은 고사하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물론 몇몇 기억들을 빼면 말이죠..

2009년 7월 9일. 드디어 날이 밝았습니다. 예정일을 일주일을 넘기고도 세상에 나올 생각을 안 하는 태평한 우리 아가를 만나는 날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아빠는 아직 서울에 도착하지, 아니 대전에서 출발도 안했던 그런 이른 아침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서 몇몇 서류에 사인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날의 시간은 여기까지 뿐입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말로는 더더욱 표현할 수도 없는 시간을 지나 결국 수술을 한 끝에 우리 아가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3.02kg 51cm. 엄마를 안닮아 완전 마른체형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우리 송사리는 마취에 덜 깨 비몽사몽한 상태로 보아도 눈물나게 예쁜 모습이었습니다.(물론 이건 주관적인 엄마의 생각입니다. 나중에 보시고 ‘뭐 그렇게까지 예쁘진 않은데..’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초보 엄마의 눈물겨운 모유수유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유가 좋다는데... 요즘 분유값도 비싼데... 뭐 그런... 누구나 다 하는 생


각으로 송사리 엄마도 아기를 낳기 전부터 모유수유를 굳게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기 전부터 모유 수유 강좌도 열심히 들으러 다니고 모유 수유와 관련된 책들도 줄쳐가며 열심히 공부했지요. 오늘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공부는 괜히 했다. 뭐 그런 겁니다. 물론 이 역시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요. 하지만 사실 모유수유 책은 커녕 짧은 팜플랫 하나 읽지 않으셨던 우리네 엄마들은 대부분 완모(완전모유수유)에 성공하셨지 않습니까. 아는 것이 때론 엄마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출생 후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젖을 물리기’ - 교육의 힘이 무섭다고 마취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젖을 물려야되는데...’였습니다. 왠지 아기에게 잘못하고 있는것 같은 죄책감과 당장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으면 모유수유에 실패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습니다. 젖이 당장 나오는 것도 아니니 젖이 돌때까지 신생아실에 두고 쉬라고.. 그리고 지금은 수술 후에 혈압이 너무 높아서 당장은 젖을 물리면 안된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박박 우겨서 아기를 데리고 병실로 가서 젖을 물렸습니다.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자는 애 깨워가면서 그렇게 젖을 물렸더랬습니다. 처음엔 그래도 잘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문제는 셋째 날 발생했습니다. 드디어 아기가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막 울기 시작했지요.

 

게다가 아기 황달수치가 치료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높게 나와서 지금 치료를 시작해야 된다며 아기를 신생아실에서 데려가버리는 바람에 아기는 분유를 먹고 말았습니다. 모유를 나오게 하는 호르몬의 별칭이 모성애 호르몬이라는데 난 모성애가 부족한 것인가.. ‘절대로 모유만을 먹이기’원칙을 지키지 못한 엄마는 심한 죄책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기는 분유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며칠 분유 먹어도 나중에 모유 잘 먹으니 유축기는 아직 사용하면 안된다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또 박박 우겨서 유축기를 가져와 잘 나오지도 안는 젖을 짜느라 하루 종일 유축기와 씨름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퇴원.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밤만 되면 아기가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통에 잠을 하나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낮에 유축 해 모아놓은 것까지 다 먹고도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통에 밤이 오는 게 두려울 정도였지요.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던 친정엄마는 분유를 한 번씩 먹이라고 하셨지만 ‘그래서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면 모유수유에 실패한다잖아’라고 화내며 아기가 밥 더 달라고 보채면 팔이 빠져라 밤새 안고 돌아다니고 가슴에 상처가 심하게 나서 아기가 젖을 물때마다 눈물이핑하고 돌아도 이를 악물고 젖을 물렸습니다. 정말 젖 먹이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나만 이렇게 힘들까 매일 고민하던 눈물겨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로 우리 아기 54일. 엄마는 자연분만을 하지도 못했고, 1시간 이내에 젖을 물려주지도 않았고, 며칠 떨어져 지내기도 했고, 심지어 분유를 먹이기까지 했지만 우리 아가는 이제 엄마 젖만 먹고도 살도 통통하게 찌고 무럭무럭 잘 크고 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책에서 읽은 대로 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안감과 그대로 해주지 못해 아기에게 드는 미안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네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아기낳고 하루동안 편히 쉬어서 몸을 빨리 회복했더라면 좀 더 젖이 빨리 돌았을테고, 밤에 분유를 한 번씩 먹이면 배고프다고 아기가 울지도 않았을 테고 그럼 팔목이 이렇게 시큰거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과도하게 유축기를 사용해서 젖 물리는 일이 눈물나게 괴로운 일이 되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책에 써있는 것들이 이렇게 하면 좋다 혹은 이렇게 될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얘기하는 거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탓입니다. 젖병을 물고 나서도 아기는 배가 고프면 엄마 젖을 물고, 분유를 먹다가 모유를 먹기도 하고 그러더군요. 젖병 물어봤다고 엄마 저 안무는 아기는 정말 성격 까칠한 소수의 아기들이라는 아이 셋을 완

모하신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 말씀을 들었으면 이래저래 좋았을 것을 말이죠.

 

부디 모유수유를 시작하는 엄마들 모두 편안히 모유수유에 성공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