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육아일기(남가현)

(16호) 100일 준비 : 수수팥떡, 그리고 엄마

100일 준비 : 수수팥떡, 그리고 엄마

왕초보 송사리 엄마의 우당탕탕 육아일기 5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에게 제대로 효도를 하는 건 딱 이 때까지 라지요. 정말로 아가는 쌔근쌔근 잘 자는 것 만 으로도 엄마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요. 이제는 서은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된 우리 아가는 잘 자기로는 세상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을 효녀랍니다. 밤에도 한 번도 안 깨고 어찌나 잘 자는지 가끔 너무 많이 자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잘 자는 우리 아가, 자는 모습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우리 아가가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백일이 됩니다.

어른들은 영아 사망률이 낮아진 요즘 백일이 뭐 그리 대수로운 날이냐 하시지만 그래도 잘 챙겨주고 싶은 게 또 엄마 마음인지라 엄마는 미리미리 백일잔치 준비에 나섰습니다. 부족한 솜씨지만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아가 백일 드레스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손님 초대는 어떻게 할까, 초대장을 만들까 말까, 메뉴는 뭐가 좋을까, 식당은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느라 매일 마음만 분주합니다. 떡은 뭘 얼마나 해야 하나 생각하다 수수팥떡 생각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수수팥떡 어떻게 해?”

“왜? 니가 하게?”

“수수팥떡은 엄마가 해주는 거라며?”

“수수가루 빻아다 소금 조금 넣고, 익반죽해서....... 힘든데 그냥 떡집에 맞추지?”

“힘들면 엄마는 우리들 왜 그렇게 열심히 해먹였는데...”

 

그랬습니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가 10살이 될 때까지 생일이면 늘 손수 수수팥떡을 해주셨지요. 저녁에 아빠가 사다주시는 달콤한 케이크가 더 맛있고 좋은데 왜 엄마는 별로 맛도 없는 떡을 힘들게 만들어서 먹으라고 하는지 어린 마음에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생일에 엄마가 만든 수수팥떡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힘들어도 자식들 생일마다 만들어 먹인 엄마의 마음도 잘 모른 채 살았지요. 이제 저에게도 아기가 생기고 100일 잔치를 준비하다 보니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이 들든, 남들이 뭐라 하든, 그게 미신이든 아니든 간에 아기에게 좋다는 것은 다 해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인 겁니다. 그런 거였습니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웠겠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효도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갓난아기 시절에 너무 예쁜 짓을 많이 했던 걸까요, 그 시절 이후로는 엄마 속을 참 많이도 썩인 딸이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저는 날라다니기를 즐겨하는 소위 말하는 날라리 학생이었더랬지요. 매일같이 밤늦도록 돌아다니고 공부는 안중에도 없어 성적은 늘 바닥이고, 집에 오면 말을 한 마디도 안하는 딸이라 엄마 속을 무던히도 태웠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혼내면 더 어긋나 학교마저 안다닌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야단도 제대로 못치고 애만 끓이셨다더군요. 그 때는 왜 그렇게 엄마가 밉고 집이 싫었는지 이유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렇게 매일 엄마에게 반항을 하는 게 하루 일과였던 날들이었습니다. 물론 암울했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대학을 가서도, 졸업을 하고 나서도 또 결혼을 하고 서도 엄마 걱정을 시킨 일은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왜 그렇게 엄마 속을 상하게 했을까요, 생각해보니 아직도 엄마가 딸이라고 부르고 계신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또 뭐?”

“고맙다구” “뭐가? 수수팥떡 만드는거?”

“아니.. 사랑한다구....”


이제 정말 우리 아가 백일잔치까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삼십 여 년 전 엄마가 하셨던 대로 동글동글 경단을 빚어 수수팥떡을 할 생각입니다. 비록 맛은 달콤한 케이크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아기의 건강을 비는 엄마의 정성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서은이가 맛이 없다고 아무리 툴툴대더라도 10살이 되는 생일까지는 꼭꼭 만들어 먹여야지요. 그럼 먼 훗날 우리 아가도 수수팥떡을 보면서 엄마 마음을 한 번 더 기억해 줄 테니까요. 맛은 장담할 수 없겠으나 엄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따끈따끈한 수수팥떡 드시러 오세요.

 

 

남가현 당원의 딸, 서은이의 100일 잔치는 지난 10일이었습니다. 건강하게 100일을 맞은 서은이를 모두 축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