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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육아일기(남가현)

(27호) 넘어지는 연습

넘어지는 연습

 

서은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지도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서은이는 생각보다도 더욱 더 훌륭하게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을 해나갔습니다. 밥도 잘 먹고, 낯선 사람들을 봐도 잘 울지도 않게 되고 말이죠. 그런데 사건은 서은이가 어린이집에 간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났습니다.

어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서은이를 밀어서 서은이가 문턱에 입술을 찧은 것이지요.. 피도 나고 입술도 퉁퉁 부어오르고.. 흐흑.. 서은이를 보기 전에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가 왔었다는 서은아빠의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저녁 때 서은이 얼굴을 보니 어찌나 더 속이 상하던지요... 그래도 서은이 아빠가 어린이집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오래 했다기에 저까지 나서면 안 될 것 같아서 꾹 참았지요. 애들이 많이 모여 있다 보면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일 테니까요. 속상하기는 해도 어린이집을 보내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굳게 마음먹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또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이번엔 같은 반 친구가 서은이 얼굴을 확 긁어 논겁니다. 혹시나 거친 손에 상처 날까 서은이 아빠는 서은이 얼굴을 만져보고 싶어도 만지지도 못하고 눈으로 쳐다만 보는, 이 귀한 얼굴을 살짝도 아니고 어찌나 깊게 패이도록 긁어놨는지요. 서은이를 다치게 한 아이 엄마야 미안한 마음에 비싼 밴드까지 사서 붙여 보낸 거겠지만 그래도 어디 비싼 밴드 붙인다고 안 아픈가요? 그리고 상처에 붙인 그 밴드도 설명서를 읽어보니 3세 미만은 사용하지 말라고 되어있는데 설명서도 안보고 붙여 보낸 모양이었습니다. 또 한 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선생님들에게 화내봐야 서은이한테 좋게 돌아오는 것도 없을 것 같아 다시 한 번 꾹 참고 ‘아이들이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뭐..’라고 쿨 한척 하며 어린이집에 과일을 한 박스 사들고 찾아 갔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제가 일하느라 낮에는 전화 통화가 어려워 아빠한테 연락을 전담시키고 있지만 그래도 서은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걸 한 번 더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추석이 돌아와 선생님 선물을 뭐가 좋을까 고민 고민을 하다 원장선생님, 담임선생님, 서은이를 이 주간 맡으셨던 전 담임 선생님 선물까지 꼼꼼하게 챙겼지요.

그런데 추석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또 사고가 생긴 겁니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가 서은이를 밀어서 교구장에 부딪혔다는데 눈꺼풀과 눈가도 까지고 광대뼈는 멍들고.. 그나마 눈 안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할 정도로 다쳐서 온 겁니다. 그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보내려고 거리가 멀어도 친구 언니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낸 건데 이렇게 계속 다쳐서 돌아오니 이래서는 어린이집을 옮겨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막 들었습니다. 아무리 선생님이 신경 써서 봐주신다고 해도 애들이 워낙 바람 같으니 사고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테지요. 그래서 극성스럽지 않은 어린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알아봐야하나 어쩌나 혼자서 고민 고민을 해봤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기대를 갖는 건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서은이가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힘을 길러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동안 엄마랑 집에서만 지내느라 서은이는 힘 쓸 일이 별로 없었던 거지요. 올라가려고 하면 올려주고 내려가려고 하면 내려주고 넘어지려고 하면 잡아주고 하니 서은이가 힘을 키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워낙 독서와 같은 정적인 놀이를 즐겨하는 아이인데다 균형 감각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은 편이라 혼자서는 잘 걷고 뛰어 다니지만 누가 조금만 밀어도 넘어지고 말지요. 넘어지는 연습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많이 넘어져봐야 넘어지면서도 다치지 않는 방법을 익히게 되고 후에는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겠지요.

또 한참을 어떻게 잘 넘어지는 방법을 연습을 시켜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넘어지는 연습’은 평생 해야 되는 일이겠구나 하는 다소 철학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넘어지지 않으면야 좋겠지만 굴곡 없는 인생이란 없으니 작거나 크거나 언젠가는 넘어지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텐데 많이 다치지 않게 넘어지고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해서 바라봐주고 넘어지면 괜찮다고, 일어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주며 믿어주는 일 뿐입니다.

 

서은아 괜찮아.... 일어나...... 아유~, 우리 서은이 이렇게 잘 일어나네... 대단하다~

 

 

남가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