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당선을 알게 되셨을 때 어떠셨어요?
○황당했죠(웃음). 한참을 웃었어요. 진보신당내에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가! 신선했구요. ‘그래! 해보자.’ 하고 기분좋게 생각했어요.
꽂혀 있는 책들이 노자니 장자니 하는 책들이 많네요? 현실과 거리가 있는 학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제가 80년대에 대학에 다닐 때는 맑스주의자를 자청했고, 흉내를 냈었죠. 불교 같은 극단적 관념론을 혐오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불교 철학으로 돌아와 있어요. 예전의 선조들이 논어니 맹자니 장자니 묵자니 하는 고전을 외우는 공부잖아요. 선조들의 공부 방법론이 글 읽는 소리가 마을 밖으로 들릴 정도였죠. 오늘날의 버리기 위한, 경쟁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어요. 위대한 선조 맑스나 부처처럼 온 생애를 바쳐 앎에 대한 것을 공부했던 거죠. 고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유익한 일입니다.
이번 겨울에 대전시민아카데미에서 주최한 공자에 대한 수업을 들었는데요. 공자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본 것 같아요. 종교나 사상이 자본주의로 연결되어 왜곡된 게 많다고 봅니다.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 문제인거죠. 용산에서 숙식하며 실천하는 문정현 신부님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적 실천이 아니겠습니까?
입당을 결심하게 되신 계기라거나 상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학교를 졸업하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어요. 그 때 입당을 결심한 이유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생명활동의 일환이 정당활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죠. 전면적인 당활동은 아니었지만 최소의 역할을 하려고 유성지역 부조직위원장 이틀 만에 슈퍼를 하게 되어서 코박고 있었죠. 그러다가 민노당의 활동이 지나치게 경도되어 간다는 것을 느껴갈 즈음, 대의를 저버리고, 자유주의 근저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실망했습니다. 부유세만해도 대중속에서 큰 환영을 받았고, 더 큰 이슈로 몰아갈 수 있었는데 독자적으로 남한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한계를 그어버린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민중의 독자적인 삶에 파고 들어 이슈화하고 일관된 정조가 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조승수씨를 비롯해서 그래서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나 생각합니다. 진보신당이 창당하고 바로 가입했습니다. 아쉽지만 동의했죠.
일각에선 진보진영은 절대 통합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차라리 진보의 확장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병에 대한 진단이 다르고 병에 대해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구요. 게다가 대중이 욕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끌려 다닐 필요는 없다고도 보구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계획에 대해 신뢰를 못해요. 슈퍼를 하게 된 것도 계획에 없던 일이고, 뽑기 대의원(웃음)이 된 것도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만약 전국대의원을 됐어도,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상황이 맞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이 일이 내게 연이 되어 왔구나 하고 열심히 했을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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