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로 2만 명 죽는대!
손정인 (진보신당 건강위원회)
8월28일 저녁에 ㄱ칼국수 집에 갔다. 원래 손님이 많은 곳이라 정신없이 바쁜 가게다. 다행히 저녁 시간 보다 이른 시간에 갔더니 좀 한가하다. 먹음직한 칼국수를 갖다 주고 계산대 앞에 선 가게 주인은 한가한 틈을 타 주방 노동자에게 한마디 내뱉는다. “신종 플루로 2만 명 죽는대”라고.
8월28일 한국에서는 3번째 신종 플루 사망자가 발생한다. 같은 날 누적 환자 수도 3,700명을 넘어선다. 그 날 또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보건복지가족부 자료를 근거로 신종 플루 대유행시 정부가 아무 대책 안할 경우 사망 2만~4만 명 발생, 적극 대책할 경우 사망 1만~2만 명 발생에 대비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공개한다.
신종 플루가 얼마나 유행할지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하니까 이게 문제이다. 이에 정부는 남반구에서 미리 가을, 겨울 대유행을 겪은 호주의 사례를 참고하여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종 플루 대유행시 전체 인구의 20% 감염, 입원환자 20만 명, 사망자 1만~2만 명(적극 정부대처 경우) 발생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책 방안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ㄱ칼국수 가게주인은 “2만 명 죽을 지도 모른대”가 아니라 “2만 명 죽는대”라고 말했다. 바쁜 가게이니까 주인이 단련되어 말을 짧게 한 건 지도 모른다. 허나 그 말 속에 중요한 함의가 녹아있다. 그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게주인 말 속엔 현재 한국인이 느끼는 공포, 불안이 찐하게 배어 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인플루엔자라는 게 불확실해서 사람들이 공포,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과연 그것뿐일까? 과연 불확실성이란 게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탓 뿐일까? 잘 아시겠지만 물론, 절대 아니다. 정부 대책이 불확실하니까,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까 두렵고 불안한 것이다.
정부를 믿을 수 없는 국민 개개인은 불안하니까 신종 플루 치료제(타미플루, 리렌자), 예방 백신에 온 신경을 쏟는다. 그래서 의료인들이 가족, 친지를 위해 치료제를 사재기 한다는 뉴스도 있다. 어쨌든 한국에는 신종 플루 치료제가 아직 국민의 5%가 먹을 양 밖에 없다. 8월 22일, 24일 거점치료병원, 거점 약국에 나눠준 거 제외하면 현재 비축 물량은 220만 명분이란다. 정부에서 말하는 10% 보유했다는 것은 10월에 수입될 예정인 278만 명분을 포함해서 하는 얘기란다. 아직 국내에 없는 약까지 포함해 숫자 놀음을 하고 있으니 국민이 불안해 할 수밖에.
그에 더해 지난 수년간 WHO에서 권고를 하고 이 분야 전문가들이 얘기했던 치료제 20% 비축(물론 이것은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치료제를 쓰는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비한 권고였다)은 정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산을 책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5%로 비축된 걸로 봐도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랬던 게 대통령의 한마디로 500만 명분(10%)을 확보할 예산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늑장 대처 때문에 국민은 정부를 더 신뢰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신종플루를 다룬 MBC 100분 토론에서 시청자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현장의 목소리들-신종플루 확진을 해주지 않아 5일 동안 아내, 100일 된 아이랑 같이 있었다는 한 남성의 얘기, 제대로 된 지침을 전달 받지 못한 채 무작정 거점치료병원만으로 지정된 병원의 의사 얘기, 예방 수칙, 예방 백신 접종, 등교 등 모든 게 불확실하기만 한 초등학생 2명을 둔 엄마 얘기 등 참 아비규환인 듯하다. 물론 오해에서 오는 측면도 있었지만 대부분 뉴스거리에서 떠도는 사실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신종 플루가 두렵다.
물론 신종 플루라는 전염병 위기에 닥쳐 우리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치료제와 예방백신 물량 그 자체만은 아니다. 결국 사회전체에서 그런 치료제, 예방백신이 개개인에게 필요에 따라 인권침해 없이 잘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회구조 즉, 보건의료체계, 법률체계, 의사결정, 보건행정 및 관리능력, 우선순위 등이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관련 사회구조에 따라 신종 플루 대유행시 피해가 크게 차이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분석결과, 정책대안을 내놓는 게 우리들의 역할이겠지만 거대한 감시의 눈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민들은 치료제, 예방백신 확보와 같은 단기전략 못지않게 보건의료 관련 사회구조와 같은 장기전략을 비판적으로 주시해야 한다.
이번 신종 플루 위기에서도 공공성이 부족한 보건의료체계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공공병원, 공공병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신종 플루 위기 대책이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을 낸다. 이 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상품인 양 취급되는 의약품에 대한 공공성도 문제다. 신종 플루에 감염된 후 쓰는 치료제 타미플루의 경우 다국적 제약회사인 로슈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특허권이 2017년까지 주어졌기 때문이다. 로슈가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타미플루 양이 4억 명분이란다. 그럼 지구 인구를 다 커버하려면 10년 이상 걸리고 약의 유효기간을 생각하면 그냥 특허권이 끝날 때까지는 어렵다. 현재 한국에서도 문제다. 이런 독점 생산 하에서는 WHO 권고 수준인 한국인의 20%가 먹을 수 있는 양을 비축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대통령 한 마디에 예산을 책정했지만 20% 수준으로 국내에 약이 비축되는 시기는 빨라야 내년 1월이라고 한다. 신종플루 대유행이 다 지나고 나서? 물론 신종 플루가 계절성 독감처럼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서도 늦게라도 치료제 비축 물량은 채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바탕 대유행이 다 지나고 나서?
그래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특허권을 일시 중지하고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실시’를 시행하라고 한다. 정부에서도 정 안되면 ‘강제실시’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대유행이 발생하고 그때도 물량이 확보가 안 되면 고려해 보겠다고 한다. 여하튼 지금은 안 된다고 한다. 또 한 바탕 대유행이 다 지나고 나서?
신종플루에 대한 정부대책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현재 신종플루 치료제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량자체가 문제인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국경없는 의사회에서도 한 나라의 특허제도는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공공 이익을 위해 신종플루 대유행으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면 현재 물량이 딸리는 상황에서는 ‘강제실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정부가 다국적 제약기업의 특허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건강을 저버리면 지난 광우병 소고기 파동 때 정부가 미국 축산업 이윤을 위해 국민 건강을 내팽개쳤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욱 불안하다.
의약품 특허 문제뿐만 아니라 예방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공공제약시설과 공중 보건에 중요한 예방 백신,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공공의약품연구소 등도 중요하다. 물론 지난 8월 11일 충북오송과 대구가 첨단의료복합단지로 선정되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산업화 논리, 이윤 논리, 경제성 논리가 공중 보건, 공공 이익보다 앞서는 상황에서 신약, 의료기기 개발 활성화는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
결국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 불안을 없애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는 8월 27일 진보신당 긴급토론회 ‘신종플루, 긴급대책을 말하다’에서 김종명 건강위원회 위원장이 첫 번째로 제안한 것과 동일하다. 정부가 국민 건강 보호라는 확실한 사명아래 신종플루 치료제, 예방백신을 신속히 확보하고 보건의료구조의 공공성을 높이는 장단기적 전략을 수립해서 잘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ㄱ칼국수 가게 주인이 “신종플루로 2만명 죽는대”라고 말하지 않고 “신종플루로 2만 명 죽을 지도 모른대”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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