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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4호) 전동이의 2박3일!

전동이의 2박3일!

문경희 (서구당원, 대전여성장애인연대 부대표)


7월5일에서 6일까지 서울여성장애인연합 주관으로 전국여성장애인대회에 참석했다. 대전에서는 약 스무 명의 여성장애인 회원과 활동가가 참석하기로 하고 버스를 못타는 전동휠체어 부대 다섯 대가 먼저 두 대, 세 대로 나누어 열차로 이동했다.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이라는 주제로 1박2일을 강의도 듣고, 직접 연극에도 참여하고 뜻 깊은 시간들을 보내고 이대로 대전으로 내려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남은 여자 셋은 뜻을 함께해 대회가 끝난 6일, 대전으로 내려오지 않고 1박2일 뚜벅이 서울여행을 감행했다. 비장애인에게 뚜벅이라 함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거지만 우리 전동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뚜벅이는 전동이와 함께 다니는 의미이다.

2시 쯤 먼저 우리 셋은 tv로만 보던 인사동을 관광하기 하기위해 콜택시를 나란히 불러 타고 종로로 향했다. 처음 우리의 계획은 인사동을 관광하면서 맛난 저녁을 느긋하게 먹고 나서 숙소를 잡고 다시 청계천을 관광하고, 그리고 숙소로 오는 거였다. 하지만 콜택시 기사님들이 인사동 입구라고 생각한 방향이 다 틀려 각자 다른 입구에 내려 서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관광이 시작되었다. 나는 인사동 서울미술관 입구에서, 다른 두 친구는 악기전문 상가에 있는 조흥은행 앞이라고 연락이 되어 물어물어 두 친구를 찾아가던 중 후미진 굴다리를 지나다 거기가 대로변인지 몰라 건너려는데 차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차에 치여 객사할 뻔 하며 우여곡절 끝에 눈물의 재회(?)를 했다.

결국 거기서 볼일 보는 걸 실패하고 찾다 발견한 곳이 내가 좀 전에 내린 미술관이라는 건물이었고 그 곳 뒤편에 엘리베이터가 있기에 무작정 내려가 보니 거기에 장애인 화장실이 우리를 반겼다. 그 곳 청소담당 아주머님이 여기를 이렇게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화장실 들어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옛말을 생각하며 즐겁게 나왔다.

아이 쇼핑을 하며 가다보니 인사동에서 제일 유명한 “쌈지길”이라는 곳을 볼 수 있었고 거기에 또 하나에 장애인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쌈지길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찾지 못해 위에는 못 올라 간 것이 아쉬웠다.) 우리는 목이 말라 찻집을 찾았지만 우리가 들어 갈만한 찻집은 없었다. 내가 타 던 콜택시 기사분이 왜 하필 인사동을 가시려고 하냐며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났다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 인사동을 돌며 느낄 수

있었다. 인사동은 그냥 오래 된 시장이었다. 복잡하고 길도 험하고 건물들의 고풍 격을 살리기 위함인지 거의 다 다 돌계단이나 돌길이었고 맘 놓고 들어 가 차를 마실 곳도 느긋하게 저녁을 먹을 곳도 없었다. 우리가 초행길이라서 편의시설이 된 곳을 찾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인사동은 전동이로 가기에는 어렵고 힘든, 고생 할 각오를 하고 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를 잡기로 한 계획에서 이러다 밤에 숙소도 못 잡을까 염려되어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를 찾던 중 노점상 총각이 친절히 가르쳐 준 세림모텔을 찾아가 보니 다행히 계단도 없고 엘리베이터도 설치 된 곳이었다. 그러나 밤에 전동이 세대를 들여 놀 방이 없는 관계로 모텔주인에게 양해를 구하여 복도 옆에다 전동이를 나란히 세우고 거기서 충전을 하기로 허락을 받고 내 전동이가 바리바리 달고 다니던 짐을 부려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그리고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해 인사동 거리로 다시 나왔다.

난 서울에 오면 서러웠는데 여기서도 그랬다. 돈이 있어도 아무리 멋지고 맛있는 식당들이 많아도 배고픔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즐거운 관광이었는데 저녁 7시가 지나니 배고픈 관광이 되고 있었다. 셋 다 식당을 찾다가 지쳐 갈 즈음 한 삐끼 아줌마가 자기 식당은 지하 1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있다며 전단지를 가지고 가면 만오천원짜리 한식이 만원이라며 우리를 유혹해 왔다. 더 찾아봐도 별로 성과가 없을 거 같아 우리는 허기지고 지친 모습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지하식당은 두 곳이 따로 영업을 하는 한우, 한식집이었다. 거기 사장님이 너무

그 식당에서 2시간을 있어야 했다. 손님들이 별로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친구가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 친구가 저녁을 먹는 것을 지켜보다 드디어 청계천으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6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내려 올 생각을 안 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긴 1층 지하... 오 마이 갓! 사장님 땀 뻘뻘 흘리며 그 더운데 계단으로 6층을 올라가 문제를 알아보니 아직 식당이 영업을 하는데도 경비실 측에서 엘리베이터 점검을 이유로 작동 정지를 시킨 거였다. 겨우 엘리베이터가 내려 와 우리는 올라왔지만 사장님과 경비 아저씨는 멱살을 잡으며 심하게 다투었다. 끝이 안 좋은 식사였다.

찜찜한 기분을 뒤로 하고 서울 산다는 친구의 친구가 가이드를 자청해 우리는 종로 밤거리를 유유 작작 즐기며 청계천으로 향했다. 한 7년 전쯤에 올 때는 없던 청계천 내려가는 길이 이제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너무나 편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물과 숲, 삼삼오오 짝은 이룬 연인들 그리고, 헉! 돌길들. 관상과 지압용으로 돌길을 만들었으면 그 옆에 아름다운 아스팔트로 샛길을 만들어야 당연한 거 아닌가. 역시 오세훈 시장은 한나라당이었다.

레이져 쇼도 보고 청계천 왔다 갔다는 증거자료도 남기며 돌길로 인해 아픈 허리를 붙들고 청계천을 관광하고 나왔다. 오다 길거리에 쓰러진 취객을 발견하고 112에 신고도 하고 즉석 사진도 찌고 노점상에서 싸구려 쇼핑도 하다가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길거리에 앉아 카프리를 마시기도 하면서 네 명의 여자들은 서울의 달을 즐겼다.

다음날 우리는 숙소에서 치장을 끝내고 10시에 창덕궁을 보기 위해 나왔다. 아침을 어떻게 먹을지 서로 의논하며 어제 그 식당은 안가기를 바라며 인사동 길은 내려오다 보니 우리 눈에 뻔쩍 뭔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어제 그렇게 찾아 다녔던 경사로가 있는 맛깔스런 칼국수집이였다.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인사동은 밤에 일찍 상점들이 문을 닫고 대신 관광객들 때문에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상점들이 많았다. 그 식당도 아침이 되는 식당이었고 우리는 정말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를 맛 볼 수가 있었다. 사장님에게 정말 맛있고 경사로가 있어 좋다고 말을 하니 tv에서 장애인분들이 턱과 계단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경사로를 설치하게 되었다고 수줍게 웃는 모습이 정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덕궁을 돌아보며 서로 전생에 자신들의 집이라며 우기며 웃었다. 역시 궁궐은 넓었다. 창덕궁을 다 돌아보려 한다면 하루가지고도 못 볼 만큼. 하지만 우리는 저녁에는 대전을 내려가야 하고 이왕 서울에 왔으니 여의도 한강 유람선은 타고 가야 한다는 의견일치를 보고 궁궐은 다음을 기약하며 여의도로 갔다.

한강!!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바람이 살랑거리는 역시 여기 근방 아파트가 왜 그리 비싼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기 전 전화로 부대시설과 요금을 묻고 가서 그런지 쉽게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유람선 가격은 장애인 할인이 30%가 되어 구천팔백원이고 유람선내부에는 경사로 설치가 세밀하게 되어 있어 휠체어를 타고도 그리 불편하지 않게 이용할 수가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타이타닉을 연출하며 그렇게 한 시간이 흘러 우리는 배에서 내렸다.

하도 더워 물만 마셔서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 점심을 건너뛰고 배에서 내려 먹기기 했는데 유람선 식당가는 밥도 없고 샌드위치는 너무 비싸 우리는 서울역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어제 오늘 왜 이리 밥이 문제인지. 정말 우리에게는 집 떠나면 먹고 싸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나 친절이 과하여 왠지 부담스러웠지만 그건 둘째 문제이고 우선 배를 채우는 것이 문제였기에 우리는 메뉴를 정하고 정말 한 사흘 굶은 사람들처럼 허겁지겁 식사를 했다. 같이 간 친구 중 하나가 서울에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퇴근하고 여기로 오기로 했다며 잠시 기다려 줄 것을 요청해 우리는

자 이제 다녀 볼까? 이런 또 하나에 복병, 그 이름도 화려한 화장실이 우리를 힘들게 할 줄이야. 장애인 화장실을 찾다가 큰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이런 거기는 카드가 있어야 문이 열리고 카드가 있어야 화장실도 갈 수 있었다. 그 건물주는 아마 볼일을 볼 때도 카드로 항문을 긁어야 소변과 대변이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 친구가 큰맘을 먹더니 언니 우리 지하철로 서울역까지 가볼까 하고 제안을 했고 경험이니 그렇게 하자고 일치를 보고 여의나루역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거기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신길역까지 갈 수 있었다. 서울역을 가려면 여의나루역에서 5호선 지하철을 타고 신길역에서 하차, 1호선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신길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어 좋아라 했건만 1호선 지하철로 갈아타려면 지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반만 엘리베이터가 있고 반은 리프트를 타야한다고 역무원이 알려 주었다. 그런데 그 리프트 왕복 운행시간이 토탈 15분. 우리가 셋이니 거의 4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배는 고프고 5시가 넘어 6시가 다 되어 가는 그 기다림이 우리를 너무나 지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내가 홀로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젊은 할머니 왈, 바쁜 퇴근시간에 왜 나왔냐며 흘끔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배고프고 기다림에 지쳐 있는 내게 기름을 확 뿌리는 거였다. 그래서 따라가 “그런 할머니는 이 바쁜 퇴근시간에 여긴 왜 왔냐고 되물었다“ 그 할머니 뒤도 못보고 황급히 사라졌다. 간혹 서울 지하철에서 이런 몰상식한 말을 듣는다는 서울에 사는 동료상담을 하는 분에게 들었지만 내가 들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어렵게 서울역에 도착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나는 7시 KTX를 타고 내려 왔다. 내 집은 대전이 아니기에 지하철를 타고 반석역까지 와서 다시 저상버스로 환승을 해야 하는데 두 대인 저상버스 중 한 대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9시5분차가 막차이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참 설레고 힘들고 그러면서도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은 삶과 같은 거 같다고 이번 여행을 하며 느끼며 생각했다.

우리 여자들 셋은 몇 달 뒤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