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정부의 ‘집속탄금지협약’ 거부에 대해
내 연금이 분쟁국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원표 (편집위원)
이 사진이 촬영된 날,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은 미국으로는 8월 14일, 한국날짜로는 너무나 익숙한 8월 15일이다. (물론 유럽은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을 종전기념일로 삼는다.) 이 날을 우리는 일제에게서 해방된 날로 기념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 가장 끔찍했던 시간 중에 하나가 마침표를 찍은 날로 기념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은 사상 최악의 끔찍한 무기로 종결이 되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살상무기들이 시험된 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인류에게 교훈을 주지 못했다. 강대국들의 패권을 위해 또다시 수많은 지역에서 전쟁이 빈발했고,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무기의 종류는 넘쳐나고 있고, 사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신무기들도 줄을 서고 있다. 3차 세계대전의 무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의 무기는 돌도끼가 될 것이라는 - 즉 다음 전쟁으로 모든 문명이 파괴될 것이라는 - 아이슈타인의 인터뷰를 재치로 넘기기에 이 세계는 정말 너무 위험하다.
최근 8월 1일자로 ‘집속탄 금지 협약’이 발효되었다. 국제협약의 발효를 위해서는 30개국 이상이 비준해야 하는데, 간신히 37개국이 비준에 동의하여 협약이 발효된 것이다. 비준 절차를 마친 국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다. 하지만 집속탄 최대생산국이자, 사용국인 미국이 협약을 거부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주요 사용국가들이 모두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명예에는 꼭 빠지지 않는 한국도 협약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은 집속탄 생산, 수출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집속탄은 대형 폭탄 속에 수십 개에서 600개 이상의 소형폭탄이 들어있어 모탄이 터지면 그 안의 자탄이 분리 폭발되어 축구장 2-3개 넓이 안의 모든 인명과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무기이다. 게다가 이 자탄들은 불발률이 10~40% 정도 되어 남아있는 폭탄으로 전쟁 이후 민간인이 계속 희생되고 있다. 일례로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의 군수물자 이동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라오스에 엄청난 공습을 벌였는데, 이 때 투하한 집속탄이 2억 7000만개에 이르렀다.
이 중에 약 40%는 불발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4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해마다 300여명이 집속탄에 희생되고 있다. 최근에도 코소보,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 집속탄이 투하되어 불발탄이 수십만개에서 많게는 600만개까지 남아있어 민간인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한국정부는 국내 생산된 집속탄은 기술적으로 우수하여 불발탄이 없다고 답하면서 협약을 거부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불발된 집속탄, 전쟁이 40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아이들로 호기심으로 만지거나 장난감삼아 던지며 놀다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작년 말, 국제반전단체이면서 무기에 투자하는 회사들을 공개하여 이들에 대한 불매를 유도하는 IKV Pax Christi와 Network Vlaanderen은 집속탄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집속탄 주요 생산 기업은 미국기업이 4개, 한국기업이 2개이고, 터키와 싱가포르 기업이 하나씩이다. 한국기업 2개는 짐작하겠지만, 한화와 풍산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들 기업이 집속탄을 생산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기업들이다. 살펴보면 천안북일교육재단, 대우증권, 동부증권, 한국수출입공사, 한화증권, HMC 투자증권, 국민은행, 산업은행, 한국투자저축은행, 메리츠증권, 미래에셋, 국민연금, 신한은행, 신흥증권, SK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이 있다.
많은 수의 공기업이 집속탄에 투자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국민연금이 집속탄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인데,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내는 연금이 분쟁지역의 아이들을 죽이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집속탄 피해자의 대부분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며, 한국을 36년 동안이나 점령했던 일본은 오늘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국사대국화를 계속 꾀하고 있지만,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높고, 해외 파병에 대해서 규탄의 목소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그러나 언제나 전쟁의 피해자였던 우리는 어느새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앞장서서 전쟁을 부추기는 호전적인 국가가 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해자임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과거의 전범국가들을 닮아가려 하고 있다. 우리와 똑같은 국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스라엘인데,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은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인을 희생시킨 가해자인데도 언제나 피해자로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내 연금이, 내 예금이 분쟁국의 아이들을 죽이는데 쓰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비록 나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죄책감을 느껴야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내 연금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투자될 수 있도록 나설 필요가 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한국정부가 ‘집속탄 금지 협약’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참여연대, 엠네스티한국지부, 전쟁없는세상, 인권운동사랑방, 민변 등 많은 시민단체 들이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주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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