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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6호)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의 문제점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의 문제점

수천억원을 들여 키워온 우리나라 비임상시험 및 안전성평가 분야의 붕괴


김종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조직부장)




대덕특구에 자리잡은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정부의 강압적인 민영화(민간매각) 추진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민영화는 절차적 하자뿐만 아니라 정부가 ‘민영화 실적’ 자체에만 급급해서 조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국제수준의 GLP 인증기관 기능을 수행하고 국제적 수준의 안전성 평가 수행 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독성전문연구기관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GLP 기술수준 개선을 통하여 의약품, 농약 등 국내 신물질 개발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 추진은 지식경제부가 2008년 10월에 그 방침을 밝힌 이후, 단 2차례의 연구용역과 1차례의 토론회를 거쳐 지난 3월 30일 확정되었다. 2009년 1월부터 3월까지 인터젠컨설팅이라는 용역업체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토론회 참석자들은 민영화보다는 공공성 강화를 통해 신약개발 인프라를 강화하고 비임상시험 기술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강조하였다.

지식경제부는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고 산하 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을 통해 삼정KPMG라는 컨실텅업체에 2차 용역을 발주하였다.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아무런 전문지식도 갖추지 못한 기관에 용역을 의뢰한 것 자체가 민영화 방침을 기어코 관철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식경제부는 당초 2차 연구용역결과를 산업기술연구회 이사회에 보고하고 관련 부처, 관련 학회, 안전성평가연구소 구성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 뒤 독립법인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연구용역결과가 미처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요약본을 판단 근거로 하여 산업기술연구회 이사회를 통해 불과 5분에 민영화 안건을 강행 처리하였다.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민영화는 실로 엄청난 피해를 갖고 올 것이다. 국제 수준에 이른 유일한 안전성시험기관을 민영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내 GLP 시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기술 수준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나 국내 인프라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국제적인 GLP수탁기관만 보더라도 미국 80여개,

일본 40여개, 유럽 20여개 등이 있지만 국내에는 한 곳도 없고, 연구인력으로 볼 때 코반스(미국)는 9,000명, 찰스리번(미국)은 8,500명, 헌팅턴(영국)은 1000명에 달하지만 국내는 모두 합쳐 700여명에 머무르고 있다.

결국 안전성평가연구소가 민영화될 경우 이미 국내 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 일본, 영국 등 세계적인 GLP 수탁기관과 최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계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 GLP기관에 의한 국내 시장의 잠식을 불러올 것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 7년간 지원하여 성장시켜 온 비임상시험 및 안전성평가분야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급기야 국제 경쟁에서의 탈락과 더불어 수천억대 외화유출의 가속화로 나타날 것이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안전성평가연구소 조합원들은 2009년 5월 16일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위원회’를 발족하고 15개월 동안 힘찬 투쟁을 전개해 왔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과 투쟁위원회 그리고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당초 지식경제부가 예정했던 7월 매각 완료는 일단 지연시킬 수 있었지만, 최근 매각주간사가 실사를 완료하고 9월 중에 매각공고를 낼 예정이라서 향후 더욱 힘찬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투쟁위원회는 과학공원 네거리, 궁동 네거리, 연구단지 네거리에서 매주 화․목요일마다 시민들을 상대로 출근선전전을 진행하고 있고, 매월 2․4주 토요일에는 대전역 주변에서 대시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GLP시험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여, 안전성평가연구소에 대한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 강화로 전환하고, 신약개발 인프라 강화와 GLP시험 기술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국내 관련 산업에 대한 기술지원 역할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확대하라는 것이 투쟁위원회의 요구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지식경제부의 졸속적인 민영화 추진에 대해 국정감사를 통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자체 교육과 토론회 등을 투쟁프로그램에 추가하여 기필코 민영화를 저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