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사유, 노동조합?
공공노조 계룡대지회(장기투쟁사업장)
장영대 (공공노조 대전충남지역본부 조직국장)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을 지키거나 향상시키기 위해, 또는 인격적으로 대우받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조직하는 것은 때로는 자신의 ‘생존권’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도박이 될 수 있다. 비록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조합원의 신분을 획득하고, 단체교섭을 통해 고용안정을 확보하고 임금을 인상시키며,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 등등이 헌법과 법률에 기본적인 권리로서 규정되어 있다고 해도 현실에서의 적
용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 것이다. 현장에서 ‘법보다 주먹이’, 혹은 ‘법보다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더 큰 위력을 갖는 것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9월 1일자로 천막농성이 130일째를 맞고 있는 계룡대의 경우가 그렇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한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인생의 다양한 산고를 겪었고 어쩌다보니 충남 계룡시로 이주를 하고 계룡대에 취직을 했다. 비록 월급은 적어도 정규직인 줄 알았던 자신의 신분이 월급만 적은 것이 아니라 정규직도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은 출근한지 이틀만이었다.
월급이 같은 일을 하는 군무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 17년을 일한 동료의 월급이 124만원이라는 것, 1년짜리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 “감시단속적 근로”라는 생전 처음듣는 기묘한 제도의 대상자이며, 그로 인해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고, 근로기준법의 휴일과 휴게시간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진실까지 알아버렸다. 그는 불의를 보았고 투쟁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해고사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두 번째로 오전 출근시간대에 피켓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해고되기 시작했다. 오늘 피켓시위를 하면 그날 저녁에 계룡대 출입증을 회수당했고, 짐을 쌀 시간도 없이 쫓겨났다. 역시 해고사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먹고 살기 힘드니 임금 좀 올려주고 인간대접 좀 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해고되기 시작했고 단 한달만에 14명의 노동자들이 해고자가 되어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것이 작년 10월에 있었던 계룡대 학살사건(!)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실직자 등 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생계를 박탈하는 것은 살인에 버금가는 행위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대해 단죄하지 않는 국가는 그 살인에 대한 공범이다. 노동위원회는 군인공제회가 노동자 14명을 해고한 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이며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두 번이나 내렸지만, 해고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몇푼의 벌금과 노동부를 몇 번 왔다갔다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처벌’을 받았을 뿐, 그들은 여전히 계룡대의 주인이며 아직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의 목숨을 쥐고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원청(계룡대)의 사업장에서 일을 하지만 원청과는 어떠한 교섭도 할 수 없고, 소속된 용역업체(군인공제회)와 원청과의 용역계약이 해지되면 2년을 일했건, 20년을 일했
건 아무런 하소연도 못하고 그만두거나 새로운 용역업체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며, 시설관리 노동을 ‘감시단속적 근로’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연장, 휴일수당 지급의 예외를 인정하는 불합리한 법체계와, 노동조합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것이고 노동조합이 있으면 회사가 망한다는 사용자들의 전근대적인 가치관, 그리고 14명의 노동자가 대량해고 되어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도 단 한명의 기자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3중고가 계룡대지회 조합원들을 짓누르고 있다.
작년 6월 계룡대 노동자 몇 명이 공공노조에 가입하면서 시작된 투쟁이 1년을 넘겨 계속되고 있고, 민주노조 사수와 해고자 복직을 위해 계룡대 제2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지 130일이 넘어가고 있다. 불합리한 법체계와 사용자의 전근대적인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라는 높은 산이 버티고 있지만, 민주노조 사수와 해고자 복직이라는 반드시 쟁취해야 할 목표가 있는 한 이 투쟁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고 공공노조 계룡대지회의 투쟁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확인하기 위한 투쟁이다. 투쟁은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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