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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호) 장애인 약 올리는 대전시의 꼼수

 [기고] 장애인콜택시? 특별교통수단?

장애인 약 올리는 대전시의 꼼수

이원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 / 시당 사무처장)



지난 2월, 대전시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사업에 209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누구나(Anybody), 언제나(Anytime), 어디서나(Anywhere)’라는 A
3 Daejeon이라는 거창한 비전을 내놓았다. 이것만 보면 대전시가 마치 장애인 이동권의 선두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과연 그럴까.

올해 서른한 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진보적인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 인권단체는 <2011대전장애인대회>의 개최를 준비하면서 조직위원회를 결성했다. 조직위원회는 올해 정책목표로 크게 6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 이동권의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직위원회는 대전시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의 시정을 대전시에 요구했다. 대전시는 거창하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발표했는데, 법규위반이라니.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은 우리가 흔히 장애인콜택시라고 부르는 특별교통수단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특별교통수단의 법정대수를 지키고 있는 도시는 서울을 제외하고 단 한군데도 없다. 국제적인 체면이 있으니 그 수준에서 법은 만들어놓고도 전혀 지키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 계에서는 꾸준히 법규를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예산부족이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혓바닥에서는 ‘법치’라는 단어가 나오니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최근 법정대수를 규정한 시행규칙이 개정되어 기준이 완화되었는데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개정되기 전의 기준은 80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대전에서는 15대 정도만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대전시의 발표를 보면 현재 60대의 장애인콜택시가 있고, 올해 15대를 추가 도입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내년에 9대까지 더하면 모두 84대의 운영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것이 법규위반일까. 바로 여기에 대전시의 꼼수가 숨어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특별교통수단’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이라 함은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차량을 말한다.(제2조 제8호)

즉, 특별교통수단은 자동리프트가 있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여야 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차체가 개조되어 있어야 한다.(보통의 승합차량은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기 때문에 천장을 높이던지, 바닥을 낮추던지 해야 한다.) 대전시에는 현재 이런 차량이 20대가 운행 중이다. 나머지 40대는 개인택시를 임차하여 운영하고 있다. 개인택시 임차 차량은 당연히 휠체어 탑승설비가 없어 시각장애인 등 중증장애인 중에서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대전시는 장애인콜택시를 60대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법규상 ‘특별교통수단’에 해당하는 차량은 현재 20대 뿐이다. 그리고 추가 도입한다는 15대 중에서도 ‘특별교통수단’은 5대 뿐이다. 올해 도입분까지 따져도 여전히 법규 위반 상태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은 숨기고 마치 대단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처럼 자랑하고 있으니 이건 완전히 장애인을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이동할 수단이 없어 아우성인데, 그런 사실을 모르는 비장애인 시민들은 대전시가 장애인 이동권의 선두에 서있는지 알 테니 말이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특별교통수단은 아니라 해도 개인택시 임차 차량도 장애인의 이동편의에 도움이 되지 않냐고 말이다. 물론 중증장애인 중에 휠체어를 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니 맞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앞서 말한 법규의 개정이 그런 취지이다. 100만명 이상의 도시에서는 80대 이상을 운영하도록 규정되어 있던 기존의 법규를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로 규정하면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이 제공될 때에는 해당 장애인의 수를 제할 수 있도록 변경하였다. 그 규정대로 한다면 대전시는 모두 82대의 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해야하는데 개인택시 임차 차량 40대를 통해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중증장애인에게 이동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니 그 수를 제할 수 있다. 그렇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수로만 계산하면 40대 남짓이 된다. 따라서 개정된 법규에 의하더라도 위법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장애인 계에서는 현재의 법규 개정을 개악된 것이라 주장한다. 기존에 100만명 이상의 도시에서 80대 이상을 규정한 것은 도시의 규모에 따라 최소한의 운행대수가 보장되어야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이 도시 내에 골고루 분포될 수 있도록 일정한 규모까지는 장애인의 수보다는 도시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특별교통수단을 관장하는 부서가 건설교통국의 운송주차과이다. 교통수단이니 건설교통국 소관인 것은 맞지만 운송주차과는 좀 생뚱맞게 느껴질 것이다. 운송주차과의 주업무는 택시관리인데, 특별교통수단이 ‘장애인콜택시’라고 통칭되다보니 담당부서가 그렇게 결정된 것 같다. 하지만 특별교통수단은 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교통약자인 중증장애인을 위한 대체교통수단이다. 따라서 택시처럼 사고되어서는 곤란하다.

어쨌든 운행형태가 택시와 비슷하니 담당부서가 운송주차과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사고방식에 있다. 운송주차과의 주업무가 택시관리이다 보니 이곳은 언제나 넘쳐나는 택시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개인택시의 증설여부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인 문제이다. 그러다보니 개인택시를 장애인콜택시로 돌리는 방법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예산이라면 휠체어 탑승차량보다는 개인택시를 장애인콜택시로 돌리는 방법이 선호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단체를 만나는 자리에서 담당공무원은 서슴치않고 ‘일석이조’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선호도를 분명히 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해 쓰여야할 예산이 택시 문제 해소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일석이조’라는 표현을 날리는 담당공무원의 태도를 장애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건 정말 제대로 약 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는 법규를 위반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이동편의를 존중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이동편의 예산을 개인택시 문제 해결에 쓰겠다고 공공연히 나서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맞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이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그 투쟁이 “법 지켜라!”라는 구호로 상징될 듯하다 참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