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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시설관리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이광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시설관리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 정부출연연구기관 간접고용노동자의 현실-

이광오(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국장)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박영서원장, 이하 KISTI) 시설관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한지 세 달이 넘었다.

지난 세 달 동안 공공연구노동조합은 박영서원장에게 수차례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오히려 박원장은 노동조합 위원장과 간부, 조합원 등 9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하고 대전지방법원에 업무방해 및 명예권침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KISTI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신들은 이들과 법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고 고용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과연 사실이 그럴까?

KISTI는 법률상 공공기관에 속하고 국가계약법과 공공기관 계약사무관리규정을 따라야 한다. 법과 규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용역업체에 대하여 관리감독의 의무를 지닌다. 계약서, 과업지시서 등에 계약사항의 이행에 대하여 관리감독을 해야하고 용역업체가 이를 어길 시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용역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시간, 업무에 관한 내용이 계약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KISTI가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KISTI와 태광실업과 2009년에 계약한 내용에는 ‘직원이 당 현장(KISTI)에 계속근무를 원할 경우 연구원과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되어 있어 고용승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박원장은 이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후 탈퇴를 조건으로 고용승계와 소장 교체 등 요구사항 수용을 약속하는 등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결국 KISTI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결정과 고용승계에 사실상 권한을 갖고 있으며 집단해고 발생에도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KISTI는 슈퍼컴퓨터, 과학기술연구망, 정보유통시스템 등 우리나라 중요 연구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질 높은 시설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에 KISTI 시설관리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다른 출연(연)에 비해 상당히 열악하다. 170만원 월급에 이마저도 3년간 동결되었고 지난 3년간 체불된 임금이 2억4천만원이 넘는다. 아내가 아이를 낳아도 휴가를 가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밤샘 근무동안 휴게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10년 넘게 KISTI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도 정부출연(연)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자부심이었다.

KISTI를 포함한 13개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정부출연연구기관에는 정규직 노동자 4,700여명보다도 많은 5,1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이중 1,000여명이 간접고용노동자다.

이 간접고용노동자들은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매년 새로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다 보니 재고용을 위해 원청, 하청사용자들의 부당한 요구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연구기관별 임금수준도 천차만별이어서 2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우리 나라 과학기술발전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박영서원장은 더 이상 법의 그늘에 숨어 있지 말고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정부출연연구기관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악화되도록 방치한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신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이를 침해하는 경우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또한 도급노동자들의 경우 고용승계를 의무화하고 임금 현실화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관계법 준수 여부를 상시적으로 감독하고 위반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고 재계약 거부 등 불이익을 제도화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외주화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직접고용으로 적극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