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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이 달의 시

(5호) 곰달래길 사람들 - 이지혜


곰달래길 사람들

 

이 지 혜

 

퇴근길 막아서는 예산댁 실내포장마차

네 개뿐인 자리엔 오늘도

철물점 제욱 씨 자리만 남아 있다

돼지 기름띠가 조청처럼 흐르는 달력 위에서

오래된 시계추가 끈적끈적하게 오가고

취한 입담이 석쇠를 달궈 탄내나는 생들을 익힌다

네 번째 마누라 가출담을 자랑처럼 마시는 복덕방 김사장

노총각 은지 삼촌은 끝내 못마땅하다

술잔을 뿌리며 한판 붙자는 김사장 소매 끝에

술 동냥 다니는 순자할매가 매달린다

왕년에 소리기생이었던 할매 노래 솜씨에 싸움은 금세 멈추고

한잔 얻어 마신 곡조에 맞춰

휠체어 끄는 소리, 턱을 없앤 문턱을 켠다 그 시간

앞집 철물점 문 닫을 시간

빈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소리 심란할 시간

꿈속에서도 달리는 제욱 씨 술잔으로

구멍 난 벽을 타고 달빛이 잠긴다

장군할배 파지가 연립촌 언덕을 구를 즈음

도라지무침 제일인 예산댁 실내포장마차

차르르 문 닫는 소리

곰달래길 하루를 닫는다

 

 

 

이지혜 : 충북 옥천 출생. 2006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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