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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호) 동아리활동 - 독서토론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김효진(당원) 

2008년 7월 14일(월) 대전시당 사무실에서 <독서토론 소모임>의 두 번째 모임을 가지다. 날은 후텁지근하고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사무실이 어수선하였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책의 세계에 빠져들다. 이 책을 추천한 ‘redmarie'님이 책을 소개한 다음 ’지우‘님, ’도토리‘님, ’지니‘님, ’모모‘님, ’태민아빠‘님과 함께, 이 책의 의미와 책으로부터 연상된 개인적 경험 등 각자의 감상과 논평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결국 <독서토론 소모임>란 여러 개의 시선이 얽히고 충돌하고 빗나가고 수렴하는 하나의 마당이고, “내가 이 책 읽은 거 맞아?”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계기이다.
1.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 질환자들의 임상사례 모음집이다. 이 책은 질병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전형적인 과학서적(‘고전적 과학’)이 아니라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로서 환자들의 병력을 서사적으로 이야기한다(‘낭만적 과학’).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인간이란 결코 단순히 ‘뇌’로 환원될 수 없는 의지적이고 경험적이고 실존적인 주체임을 환기한다. 한편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정상인들이 과연 ‘정상적’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2. 끔찍하게 사랑했던 할머니의 죽음을 극복하고 “인간으로서의 통일”을 회복하는 저능아 <시인 리베커>의 이야기는 새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정서가 아닐까. 현재 인간들은 ‘대뇌겉질’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통일성과 공감력을 상실한, 정신적으로 ‘결함 있는’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쌍둥이 형제>의 일화도 “인간의 영혼은 그 사람의 지능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기억상실을 수반하는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들의 이야기(<길 잃은 뱃사람>, <정체성의 문제>)는 인간의 정체성은 곧 기억이라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억이 끊겨서 연속성을 잃어버린 존재”는 곧 자신을 잃어버린 존재이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명공학을 활용하여 몸을 복제한다고 하더라도 기억을 재현할 수 없기에 전혀 ‘자기’가 아닌 것이다.
4. 시각인식불능증에 걸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보여주듯, 인간은 구체적인 면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물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다. 인간은 느끼고 판단할 수 있기에 하나의 기계이자 컴퓨터가 아닌 것이다. “판단이나 구체적인 것, 개별적인 것을 등한시하고 완전히 추상적이고 계량적으로만 변해가는” 과학은 하나의 괴물이다. 과학은 시와 화해해야 한다.
5. 디지털 고화질 영상을 보고나서야 ‘보통의’ 영상이 얼마나 흐릿한지를 깨닫듯이, 결국 ‘정상적’인 사람들이란 오히려 생생한 감각과 예리한 직관이 억제된 평범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