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결별해야 새로운 진보정당의 미래가 있다.
이원표 (진보신당 대전시당 사무처장)
최근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종북진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도를 넘었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하였고, 민주당 내에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여지없이 보수언론들은 뜯어먹기에 바쁘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장 먼저 서로를 적대하면서 내부를 공고하게 다지면서 반대파를 ‘이적’으로 모는 것은 남과 북이 모두 공통적이다. 이 때문에 남한의 좌파는 항상 친북 혹은 종북이라는 꼬리표를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달아야했다.
좌파 혹은 진보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점은 여러 가지 이다.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정권에서부터 민족 중심의 주체적 발전을 지향한다는 평가까지 스펙트럼이 넓은데 불행하게도 제대로 토론되지 못한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과 현재 그 뒤를 잇고 있는 세력이 진보를 친북 혹은 종북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가운데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과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곧 ‘수구 보수의 논리’가 되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북한민중을 통일의 주체로 보면서도 그를 억압하는 정권에 대해 단 한마디의 말도 못하는 동안 남한의 좌파 혹은 진보는 종북(친북)과 동일한 이미지를 형성해버렸다.
문제는 진보세력이 여전히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같은 민족으로 북한을 바라보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반통일적으로 매도하여 북한의 독재와 군사주의를 눈 감거나 심지어는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615공동선언을 신성문서로 다루면서 김정일정권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유는 단 하나, 통일의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2004년 정점을 찍었던 민주노동당이 언제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존재하지만 확실한 것은 2006년 일심회 사건과 북핵실험에 대한 모호한 입장이 큰 원인이 되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북핵을 자위권으로서 존중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와 파문이 일었다. 이렇게 당시 민주노동당 내의 자주파가 민족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동안 진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치를 바랬던 국민들은 ‘진보=종북(친북)’이라는 과거의 공식을 되씹게 되면서 민주노동당은 추락했다.
진보신당 탄생 이후 민주노동당은 이정희라는 새로운 인물의 발굴에 성공하면서 변신하는 듯 했다. 이정희의원이 대표가 되면서 더욱 민주노동당과 이정희대표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듯 했지만 3대세습에 대한 모호한 태도로 종북이미지를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경향신문과의 논쟁은 민주노동당에게 괴로운 기억일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운 기억이 진보신당과의 통합논의에서 되풀이되고 있으니 참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진보신당을 처음 선택한 사람들에게 입당동기를 물어보면 거의 같은 답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에게 표는 주었지만 선뜻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종북으로 이미지된 민주노동당은 자기가 추구하는 진보정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진보신당이 생기니 입당을 하게 된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이렇게 진보신당은 탄생부터 민주노동당의 분당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에서도 민주노동당과 비교되는 어떤 것이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민주노동당에 종북색깔을 뺀 진보정당이다. 거기에 80년대 운동권에서 벗어난 신좌파의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창당 초기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진보신당은 진보정당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조직력이 약하고 세를 형성하는 기술이 부족하지만 과거 진보정당운동이 가졌던 한계를 슬쩍 넘어서 버렸다. 가장 좋은 예가 지난 연평도 사건 이후 국회의 대북규탄결의문 표결이다. 유일한 의원인 조승수대표가 대북규탄결의문의 유일한 반대표였다. 민주노동당 5명의 의원은 기권을 선택했다. 민주노동당이 기권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작년 이정희대표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라고 말하고 집중포화를 맞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한 반대표를 던지고 원래 여야합의처리 예정이었던 것을 굳이 반대토론까지 한 진보신당에 대해 종북 혹은 친북이라고 돌을 던진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보수언론에서도 대북결의안 채택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었지만 반대표에 대해서는 간단히 반대의견만 기술하는 정도였다. 사실 당시 대북결의안은 ‘군사적 대응’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염려한다면 당연히 결의안에 반대하면서 평화를 위한 준비는 ‘군축’임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 역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진보신당이 존재하여 불필요한 논란 없이 이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힘이 적어 충분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필요하게 종북 혹은 친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필요한 부분만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진보세력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추구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오해들과 왜곡, 그리고 편견에서 한 발 벗어난 것이다.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처럼 서로 총을 겨누고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총을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 분단 상황에서도 평화를 확립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가 먼저 군축을 단행하여 상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과거의 진보정당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시도라도 할라치면 불필요한 방향으로 쟁점이 흐려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 진보신당은 이 한계를 우리도 모르게 스윽 넘어서 버렸다. 그래서 진보신당의 현재 위치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 확립과 군축을 주장하기 아주 좋은 상태이다.
병역거부자이면서 평화운동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진보정당 활동가인 나는 진보신당의 이런 현재의 위치가 허물어지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 북한을 향하는 총부리 앞을 가로 막고 서면서도 그 행동이 순전히 ‘평화’로 읽혀질 수 있는 진보신당의 위치가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은 과거의 한계에 다시 갇힐 수밖에 없다. ‘도로민노당’이라는 말은 적어도 나에게 이런 의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진보신당의 창당정신이다. 그것을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새로움’에 있는 것이지 ‘통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움을 위해, 그리고 그것이 진보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민족통일에 갇힌 진보의 한계를 계속 걷어내야 한다.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37호) 씨를 잘 뿌리는 사람 [오재진] (0) | 2011.08.09 |
---|---|
(37호) 노동자중심의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에 함께 합시다 [박종갑] (0) | 2011.08.09 |
(36호) 납득할 수 없는 주장 <황수대> (0) | 2011.07.15 |
(36호) 두려움없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자! <선창규> (0) | 2011.07.15 |
(36호) 진보진영의 통합이 우선이다. <김승훈> (0) | 2011.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