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을 무기로 삼아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이명박 정부
이원표 (진보신당 대전시당 사무처장)
올 10월부터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시행이 된다. 그동안 장애인활동보조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서비스가 법제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장애계가 들끓고 있다. 서울에서는 연일 투쟁이 끊이질 않고 있고, 대전에서도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도로 대책회의가 꾸려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이미 진행되오던 사업을 법제화하는 시기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법제화되면서 개악되는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인데, 이중에 정말 황당한 부분이 하나 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시간당 수가가 8천원으로 정해져 있고, 이중 약 6천원 가량이 활동보조인에게 지급된다. 사업기관마다 수수료율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이번 법제화로 수가는 8,300원으로 인상되었고, 소폭이지만 활동보조인의 급여가 인상되었다. 또, 그동안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야간, 휴일 수당이 포함되었다. 사실 그동안 활동보조인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왔다. 본 급여의 150%를 지급해야 할 야간, 휴일 노동에 대해서 전혀 반영되지 않아 사업기관별로 다르게 대처해왔고, 대부분의 경우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이번 법제화를 통해 야간, 휴일 활동보조에 대해서는 원래의 8,300원에서 1,000원을 인상한 9,300원으로 수가를 책정하고, 인상된 수가를 통해 사업기관이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할증되는 1,000원은 장애인 이용자에게 할당된 바우처에서 지급되기 때문이다. 100시간을 판정받는 장애인은 83만원의 바우처카드를 받아 활동보조를 이용하게 되는데 야간, 휴일 할증 때문에 서비스시간이 줄어들어 100시간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장애인의 서비스를 잘라서 활동보조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안그래도 활동보조라는 고된 노동에 비해 급여가 턱없이 적기 때문에 일선현장에서는 실제 서비스받은 시간보다 더 길게 바우처를 끊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장애계에서 활동보조 수가인상을 요구하여 활동보조인의 급여가 더 높아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정부가 노골적으로 장애인의 서비스시간을 잘라 활동보조인의 급여로 지급하겠다고 하니 황당할 노릇이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시간은 생존시간과 같다. 어떤 중증장애인은 딱 활동보조시간만큼만 살아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활동보조시간은 중증장애인에게 굉장히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활동보조 노동의 고단함을 알기에 스스로 생존시간을 줄여가면서 알게 모르게 활동보조인에게 더 많은 바우처를 끊어주고 있었는데, 이제 정부가 아예 서비스를 잘라서 급여로 지급하겠다고 하는 꼴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머리에는 아마 이런 모양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이 서비스시간과 급여를 두고 서로 으르렁대는 모양 말이다. 그래서 그 중간에 자기가 중재자마냥 멋있게 나타나서 해결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명박처럼 그렇게 멍청하지가 않다. 그로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서비스시간이 줄어드는 활동보조인 급여 인상을 반대한다고 외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장애인운동은 활동보조인의 급여 인상을 주장해왔고, 그것을 위해 활동보조 수가가 1만원으로 인상되어야한다고 요구해왔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운동은 이번 법제화에 대해 활동보조인의 급여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인상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다만 할증되는 수당은 정부가 부담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가 여전히 활동보조 수가는 1만원으로 책정되어야 하며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상해보험과 더불어 각종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의 사용자가 아니다. 그것은 환경미화노동자의 사용자가 동네 주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활동보조인의 사용자는 정부이다. 정부가 활동보조인의 급여와 각종 노동조건의 기준을 정하며, 활동보조인을 교육하고 조정하고 있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의 야간, 휴일 수당은 당연히 정부가 지급해야하는 것이지, 장애인이 지급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 당장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을 이간질하려는 말도 안 되는 음모를 중단하고, 정상적으로 제도를 운영해야한다.
정부가 시행하는 다른 모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인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받아야할 아주 당연한 생존의 기본 권리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활동보조인는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공적영역에서 정부의 방침대로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이다. 따라서 활동보조인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정확하게 책정하여 정부는 지급해야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을 확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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