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학생 집단성폭행 사건
엘리트주의가 보여주는 기막힌 현실
12월 27일, 대전지방법원 가정지원에서 하나의 판결이 예고되어 있다. 실제로 판결이 이뤄질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그것이 혹여 솜방망이 판결이 되지 않을까 많은 곳에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단체와 성폭력상담소에서 이 사건을 주목해서 보고 있다. 바로 작년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지적장애학생 집단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정도로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제 중학생에 불과한 지적장애인에 대하여, 그것도 16명이나 되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집단으로 가한 성폭행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런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가해자들이 구속수사를 받기는커녕 자칫 ‘합의’라는 이름의 돈거래로 묻힐 수도 있던 터여서 더욱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여론의 관심은 잠깐이고 재판은 길게 진행되는 것이 문제였다.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대전여성폭력방시시설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형사법정에서 다뤄지도록 하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가해자 구속은 고사하고 피해자까지 가해자부모들에게 휘둘리는 지경이 되었다. 이미 피해자부모가 합의를 해준 마당에 여기까지 한 것도 큰 성과라는 자문변호사의 말이 있었지만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끝까지 매달리고 사회적으로 고발하기를 반복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언제나 법은 가진 자의 편에 있었다. 형사법원은 ‘죄질이 무겁다’, ‘엄격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하면서 범죄 자체에 대한 인식은 심각한 중죄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가해자도 청소년이고, 피해자와 합의를 보았다는 이유로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한다고 결정했다. 이제 소년부 재판정에서 적당한 반성의 제스처와 얼마간의 사회봉사 또는 보호관찰 처분 정도로 끝나게 되면 가해자의 부모들이 얻고자 하는 마무리가 될 것이다.
아직 미성년인 가해자들이 반성할 기회를 주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 더욱 좋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건 모든 범죄 가해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의 목적은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화풀이를 국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가해와 피해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원이 주는 메시지는 거의가 부당한 것이 현실이다.
바로 오늘날 교육현장에 가보면 이 효과를 알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모○란 애 건드린다고 뭔 일 나겠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이게 지금 우리 법원이 던진 메시지이다. 같은 종류의 범죄를 예방하기는커녕 돈과 권력이 문제지,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른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당국은 법원의 이런 부당한 메시지를 한껏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엄청난 사건 뒤에도 16명의 가해 남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유는 아직 법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이 교육청과 학교의 주장이다. 이것은 한 여자아이를 두고 16명의 남학생들이 집단으로 돌아가면서 여러 번에 걸쳐 화장실과 옥상에서 성폭행을 한 이 사건이 만약 성폭행이 아니고 합의하에 한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교육청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교육이 이렇게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또, 아무리 개방적이라도 저런 성관계가 합의하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정말 그렇다면 대전교육청은 세계 제일의 프리섹스주의자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보수교육감의 대표주자로 항상 이름을 올리는 김신호 교육감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정말 궁금하다.
학교에서는 마땅히 이 아이들에 대해 적절한 교육적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 정학이나 퇴학을 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 포르노 따위를 보고 흉내 낸 것이 틀림없을 이 아이들의 왜곡된 성(性)인식을 교정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이참에 성폭력예방을 위한 교육청 차원의 프로그램도 고민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절대로 이런 일을 벌이지 않는다. 왜? 수능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연하다는 말이 슬플 정도로 가해학생들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의 태도였다.
올 해 1월에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갔는데도 판결이 12월 27일까지 미뤄진 이유는 이 아이들이 ‘고3’이라는 가해자 부모들의 요청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입시와 대학진학, 이것이 이 엄청난 사건을 묻고 갈수도 있을 만큼의 위력을 발휘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슬픈 나라이다. 그리고 제 자식이 무슨 짓을 저질렀든 간에 일단 대학은, 그것도 좋은 대학으로 보내야겠다는 그 부모들의 생각이 용납되는 어이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선고가 또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아직 가해자들이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 상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졸업 이후로 선고를 연기하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시도가 된다면 이제 분명해진 것이다. 가해자 측은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없을뿐더러 그것으로 인한 입시상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는 아주 파렴치한 부류에 속한다. 법원이 이러한 시도를 받아들인다면 그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이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당연히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형사법원으로 사건을 되돌려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사회의 거울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어른들이 만든 이런 메시지를 가장 빨리 아이들이 흡수할 것이고, 그 아이들이 자라 미래의 기성세대를 형성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래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돈과 권력만 있다면 사회적 약자쯤이야 얼마든지 괴롭히고 폭력을 가해도 괜찮을 수 있는 사회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 지금의 기성세대가 바라는 미래일까.
그리고 지금 가해자 부모들을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경고하고 싶다. 지금 당장 돈으로 죄를 피하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면 그걸로 끝날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말 착각이라고.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 일말의 가책이 평생을 괴롭히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사회적으로 이 문제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광주인화학교 문제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제기가 되고 결국 이번 도가니라는 소설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폭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럴 때 이렇게 돈과 힘으로 자기 자식들의 죄를 피하게 한 것을 정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속죄할 수 있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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