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이~땅!’ 식 버스개편으로 거리를 헤매는 시민들
편집부
“이 버스 ○○○로 가나요?” “안가요!”
“○○○로 가려면 몇 번 타야되죠?” “우리도 몰라요. 노선표 보세요.”
노선 개편 첫 날, 버스정류장 (출처 : 대전일보)
요즘 버스를 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버스기사와 승객들의 대화이다. 심지어는 기사와 승객 간에 노선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2월 30일, 버스노선 전면 개편 후의 일이다.
대전시는 56년만의 개편이라고 하면서 그동안의 구불구불하고 불편한 노선을 바꿔 시민들의 이용편의를 높이는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시내버스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나오고 있으며 아예 택시를 타고 다니는 시민들도 늘었다. 개편 첫 날인 12월 30일에는 시 교통과로 항의성 전화만 1000건이 넘었으며, 아직까지 하루에 600건 정도씩 게시판에 불편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시 관계자는 "타 도시의 경우 시민불편이 3-4달 이상 계속됐으나 어느 정도 새로운 체제에 익숙해진 뒤 이용 편의가 오르고 이용객도 증가했다"며 "당분간은 꼭 고쳐야 할 문제점 해소에 주력하고 환승체제의 이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서울시도 BRT체제와 함께 노선 전면 개편 이후 6개월간의 혼란을 거쳐 지금은 안정기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대전시도 아마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이면 시민들도 바뀐 노선에 익숙해질 것이고, 불만도 잠잠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전 노선보다 객관적으로 좋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시의 높은 분들은 아마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쯤이면 완전히 버스 노선에 익숙해진 시민들에게 이것을 치적으로 홍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 짧게는 3,4개월씩, 길게는 6개월 넘게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서 정착이 되어야하는지가 문제로 남는다. 높은 분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자와 볼펜을 들고 그어대고 시민들은 그것으로 혼란을 겪다가 차차 익숙해지는 이놈의 관행이 좀 멈췄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벌였던 불도저식의 버스개편과 청계천 공사가 치적이 되면서 너도나도 각 지방정부에서 따라하는 바람에 남아나는 강이 없다는 소리까지 들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전시의 버스개편도 서울 따라 하기라는 비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버스 색깔이니 환승 연장 같은 것이 꼭 서울 닮은꼴이다. 그리고 가장 닮은 것은 날짜를 정해서 ‘요이~땅’하는 불도저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책상에 지도를 놓고 이리저리 그어대어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으로 적용하면 되니 높은 분들은 보기도 좋고 실행하기도 편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봐야 알겠지만, 대략의 혼란기가 지나 시민들이 익숙해지면 좋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적으로 정착된 모습의 버스 노선과 환승 방식을 두고 다른 시나 외국에서 좋은 사례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치적이 된다. 시민들의 불편을 대가로 한 자치단체장의 치적인 것이다.
그렇게 심시티 게임하듯 밀어붙이면서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시민들만 잔뜩 피해를 보고 난 뒤의 일인데 말이다.
대전시는 56년 동안 바뀌지 않은 버스 노선으로 둔산으로 도시 중심이 이동한 현재에 맞지 않아 전면 개편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사실은 일부 거짓말이기도 하다. 전체의 골격은 원도심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지만, 상당수의 버스 노선이 둔산 쪽으로 많이 변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가 넓어지면서 새로 만들어진 버스 노선도 생기고, 연장이 되기도, 또는 축소가 되기도 하면서 2,30년 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이미 변해있는 상태였다. 노선이 하나, 둘씩 변해 갔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일 뿐, 만약 대전에 30년 만에 귀향한 사람이 보았다면 노선이 크게 바뀌었다고 하였을 것이다.
비록 보기에 좀 왜곡되어 있는 노선일지라도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었고, 그 상태에서 이 노선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시민들의 익숙함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불편한 노선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없었을까. 구불구불한 노선을 직선으로 만들고 그 주변을 도는 노선을 연장 혹은 축소하여 익숙함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예전보다 약간의 속도를 내서 노선변경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장기간의 계획으로 노선을 바꾸어갔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혼란과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위해 대전시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 상황을 살피고, 노선변경을 과정으로 두어 연차적으로 추진하는 등의 행정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시민들은 편하고, 행정기관은 머리가 깨어지도록 고심해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처럼 행정기관은 한 번의 계획에 한 번의 실행으로 손 털고,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며 맞춰가야 하는 행정이 아니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과정의 혼란과 피해를 무시한 채 결과만을 두고 치적하는 행정편의주의가 사라지고, 대신에 시민편의주의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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